Ⅰ. 백제시대(백제)의 역사
1. 한성시대(漢城時代) BC18-AD475
온조(溫祚)가 서기전 18년에 하남위례성에 작은 부족국가인 백제를 세웠다. 백제 초기의 지배계급은 북에서 남하(南下)한 유 이민(流移民)의 집단이 한강 유역에 정착한 사람들이므로 고구려계임을 알 수 있다. 초기 백제의 도읍지는 한강 유역
Ⅰ. 개요
백제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AD384)이다. 백제는 침류왕 원년 7월에 동진(東晋)에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한 호승(胡僧) 마라난타는 귀국길에 오른 백제사신과 함께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고 나서 오랫동안 불교관계기사가 나오지 않지만, 사비시대
2) 조성 배경
백제계 석탑은 충청, 전라지역 즉, 백제문화권이었던 지금의 호남권에서 대부분 발견된다. 왕궁리 오층석탑을 제외하면 모두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백제계 석탑들은 백제 전형양식이라 불리는 정림사탑을 거의 모방하거나 부분적으로 닮아있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은 통일 후 고대
백제․고신라 모두 고졸하고 청순한 양식이 인기를 끌었다. 통일신라부터는 사실적인 조각양식이 대두되어 모든 불상은 우아하고 세련된 사실양식이 정형화되었으며, 고려시대는 국가불교의 영향으로 거대하고 화려하며 단아한 불상이 유행하게 된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소박하고 평판적인 조
백제시대의 석탑은 불교 수용 초기의 목탑을 본따서 재료를 석재로 바꾸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부여 정림사지석탑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옛 백제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 다수 만들어 졌는데, 이들을 백제계
삼국유사에 신라 경주에는 한때 ꡐ절이 별처럼 퍼져 있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寺寺星張 塔塔雁行)` 장관을 이루었다는 말이 전한다. 석탑은 우선 그 재료면에서 비바람이나 불에 견디는 힘이 강하여 역사적으로 오래된 것들이 많이 전하고, 돌을 다루는 솜씨와 재주가 뛰어나 오늘날에는 귀중
Ⅰ. 개요
불교건축을 자료에 따라 분류한다면 목조건축과 석조건축으로 대별할 수 있다. 먼저 목조건축은 전각, 당우, 문, 누(樓), 목탑으로 분류될 수 있으면, 석조건축은 석굴사원, 석탑, 부도, 석비, 당간지주, 석등, 석교(石橋)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람의 장엄은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
Ⅰ. 고구려시대의 불상
삼국중 불교를 가장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대륙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수용과정에 있어서 별다른 마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불교조각은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교전래 이전의 고분의 벽화나 고구려
양식의 대표작이다.
통일신라 초기인 673년에 백제 유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었던 백제 조각양식으로써 조성한 귀중한 예로, 따라서 전반적인 양식은 7세기 초로 편년해도 좋을 정도로 고식을 띠고 있다. 비록 시대는 늦지만 구양식을 답습한 것이므로 호류지 삼존상의 계보추정에 귀중한 단서
백제의 공장들이 신라의 황룡사 9층탑과 일본의 법륭사, 사천왕사, 법륜사 등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건축에서 백제시대 절의 건축원형을 찾아볼 수가 있다. 백제의 옛 땅에는 몇 개의 석탑만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부여 정림사 터의 5층석탑은 그 구조가 목조 건축의 양식으로 되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