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주족(周族)의 선조(先祖)는 농업의 신 후직(后稷)이라고 전해지고, 상(商) 왕조 중엽 이후부터 한족(漢族) 농경민들의 영역 개척과 함께 남하하며 위수 유역 기산(岐山) 지역에 정착한다. 무왕의 증조부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아들 계력(季歷)과 그를 계승한 창(昌)은 상 왕실과 관계를 맺으며
보민(明德保民)사상은 춘추시대의 사회변동을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이해가 싹터 나오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갔다. 철기의 등장으로 경작지를 확대할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또한 국가들끼리 힘에 의한 각축 전쟁이 빈번해지자 당시 각 국은 전투력을 갖추고자 하였다. 그래
충분히 봉양하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도록 하여 백성 스스로 천자에게 귀의해 올 수 있도록 함을 강조하였다 즉, 민귀군경(民貴君輕)의 이념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백성의 생활을 보호하고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보민(保民)의 원칙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였다.
却說周兵圍攻壽州, 經年不下, 轉眼間已是顯德四年, 城中漸漸食盡, 有些支持不住。
각설주병위공수주 경년불하 전안간이시현덕사년 성중점점식진 유사지지부주
각설하고 주나라 병사가 포위공격한 수주는 몇 년동안 함락되지 않아 별안간 이미 현덕 4년으로 성안에 점차 식량이 다하고 조금 지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