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즉 한국 연구자, 한국에 기업이 있는 사람, 재일 코리안의 친구, 식민지 시절 재조(在朝)일본인이나 그 후세 등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지니지 않았다. 2000년에 들어와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는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일부 생겼고, 언론에서는 기존의 용어를 일본식
일본인은 이 축소지향을 배우지 않으면 에너지 위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스페이스 절약이다. 일본은 작은 섬이므로 이레코상자처럼 스페이스 절약을 연구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다른 나라 공항에서는 ‘아, 내렸구나’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일본의 공항만은 비행기에서 내려도 아
Ⅰ. 일본인과 한국인
특정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나 집단의식의 특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이들 특성이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의 하나는 인간관계나 집단 상황에서 타인과의 관계나 응집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대화 속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분석
Ⅰ. 序論
일본인은 그들만의 문화, 기후, 풍토위에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음식 문화는 수천 수 만년 동안 그곳에서 살고 있는 민족의 삶의 흔적을 담은 그릇이다. 인간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서의 음식 문화는 특정 민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정
Ⅰ. 식민지와 식민지제국의식
재조선 일본인 식민지에 관한 연구는 아직 극히 미미하다.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인]과 [식민지와 일본인], 기무라 겐지(木村健二)의 [명치기 조선진출 일본인에 대하여], [근대 일조\"관계\"하의 재조일본인] 등이 그것들이다. 그중에서 가
재조선 일본인 식민자에 관한 연구는 아직 극히 미미하다.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인]과 [식민지와 일본인], 기무라 겐지(木村健二)의 [명치기 조선진출 일본인에 대하여], [근대 일조\"관계\"하의 재조일본인] 등이 그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지무라의 두 편의 글은 재조선
재조선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하였지만 실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조선 강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간섭의 명분을 찾기 위해 `내정개혁`을 내세워 조선 정부를 압박하였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하는 한편 농민군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혁을 추진하기 위
재조의 시기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즉, 임란의 영향으로 인해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김성우,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2001, p376, 『한국사』,『한국사연구』,「16세기 국가재정의 위기와 신분제의 변화」,『조선사연구』,
재조면 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민족이 사대주의에 편중될 때 단군신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은 단군신화를 말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서양문명을 대표하는 기독교에 의해 단군상이 훼손당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일본인은 거의 무상으로 조계지를 대여 받을 수 있었고 자유로운 통상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계에서는 조선 정부는 일본인에게 어떠한 세금을 징수할 수 없었다. “개항 후 제물포에는 영사재판권이 인정되는 치외법권 지대인 조계, 외국은 잡거가 허용되는 조계밖 10리 이내, 조선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