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으로 고구려의 각 지역에 위치한 고구려의 도성과 이와 관련된 주요한 논쟁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기존의 학설이었던 산성과 평지성을 묶어서 도성을 형성한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고, 환인 지역 시기 도성 비정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Ⅲ. 삼족오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의식 세계
1.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삼족오 인식
한대(漢代)의 삼족오 표현 양상과 고구려의 삼족오 표현 양상을 살펴본 결과 두 지역의 삼족오 표현 양상은 일중삼족오가 주류를 이루는 점이나 두꺼비가 대부분 달 속의 대칭 요소로 표현되는 점 등 강한 연계
석주선 선정 사유
1. 기억하기 쉬운 연계성이 있을 것
2. 관심분야에 대한 절충이 가능할 것 (패션 : 남혜림, 교육 : 노주영)
3. 한국 문화에 대한 기여가 높을 것
1. 석주선(난사)의 일생
출생~ 사망
- 1911년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평양 출생 ~ 1996년 3월 3일 (86세) 사망
학력
- 평안
집안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까지 남벌에 공을 들인 장수태왕은 그 영토를 아산만, 곧 흥해까지 남하하였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고구려는 그 천손사상으로 인하여 정벌지역을 복속시키지 않고 제후국으로 남겨두는 정책을 선택하였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재기에
3. 동북공정의 추진 목적
동북공정의 추진 배경 중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패권주의의 발현이라는 입장에서 그 추진 목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의 조선족 이탈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에서 목표하는 지역은 동북 3성으로 길림성
삼국시대
(백제)
1. 익산 미륵사지 (益山 彌勒寺址)
사적 제150호.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소재. 백제 무왕 때 세워진 사찰.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 왕이 왕비와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
중국이 2002년부터 200억 위안(약 3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추진 중인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현재의 중국 국경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어 현재 중국의 영토와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1000편이 넘는 고구려·발해 관련
고구려비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오는데, 이 두 개의 고구려비 외에 삼국시대를 기록한 우리 나라 사서에는 ‘매금’이란 명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매금은 고구려가 신라왕을 낮춰서 부르는 이름으로 신라는 고구려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아주 단적인 증거라는 주장이
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이다.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줄여서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414년(장수왕 2)에 세운 <광개토대왕릉비>(광개토대왕릉비)는 사실을
머리말
예전에 고대의 한반도 지도를 볼 때면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보면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주제를 정할 때 고등학생 때 공부했던 국사 책을 훑어보면서 오랜만에 고대 한반도 지도를 보며 예전에 했던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문득 눈에 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