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론들이 개항을 반대한 데는 경제적 이유도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이들은 각각 상소에서 조선과 일본은 산업의 발전 정도가 다르고 교역 물품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장 통상을 허용한다고 하여 조선의 경제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 했다.
그러나 조선은 이같은 문제에 대한 충분한 준비
척사론에 기운 우국경시의 문학도 나타났다.
3.개화기 문학의 갈래
1) 개화 가사
개화 가사란 갑오경장 이후에 고대 가사의 전통적인 율조에 새로운 개화 사상을 담은 시가를 뜻한다. 개화 가사는 1890년대에 들어와서 성숙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많은 애국 가사들이 지어졌다. 그리고 이들 가사는 주로 <
주장하였다. 李離和, 「韓末 儒生層의 現實 認識과 義兵鬪爭-崔益鉉의 思想과 政治活動을 中心으로」, 『國史館論叢』15집, 1990, 2쪽.
이러한 이의제기는 그들이 과연 척사론의 철저한 고수라는 경직된 태도로 일관했는지 아니면 근대지향적으로 퇴색ㆍ변모했는지를 다시 짚어볼 필요를 발생시켰다.
변질되어 버리자, 척사론 자들은 지배층을 중심으로 국론을 통일하여 소중화의 문물을 지키고 쇄국양이정책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전통적 가치질서를 보존해 가고자 하는 데 그 근본적인 목표를 두었다. 그리고 1871년 흥선 대원군은 1866년에 이미 지어 놓은 척화비를 전국의 고을에 세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