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사편수회 이전의 관찬사서 편찬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는 의정부 산하에 編史局을 두어 “본국 역사의 편집을 관장”할 것을 결정하였다. 한편 이때 신설된 학무아문에는 편집국이 설치되고 여기에서 “국문 철자, 각 국문 번역 및 교과서 편집 등을 관장”했다. 따라서 의정부 편사국에서
편찬한 <<조선사>>는 종래의 식민사학을 결집한 것이었다. 일제는 <<조선사>>를 통하여 식민사학을 체계화하는 한편 이후의 식민사학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식민사학의 식민통치상의 기능을 밝히는 데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2.조선사편
Ⅰ. 농학의 발달에 따른 농서편찬과 농서간행
예나 지금이나 정부가 중요하게 행하는 일은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방관(勸農官) 및 농업경영자에 대해 기술교육을 베푸는 일이라 하겠다. 조선 전기에 있어 이 작업은 특히 농서의 편찬 및 보급이란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 시대 봉건정
편찬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서양 및 영국의 근대사
(1) 서양의 근대사
서양근대사는 대체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동유럽과 러시아 및 아메리카까지 포함되는 역사이다. 이 시기는 유럽 봉건사회가 해체되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
. 이 법전은 1460년(세조 1)에 국왕 세조의 명에 의하여 최항(崔恒: 영성부원군), 노사신(盧思愼: 우찬성), 김국광(金國光: 우의정), 강희맹(姜希孟: 형조판서)을 위시하여 한계희, 임원준, 홍응, 성임, 서거정 등에 의하여 그 편찬사업이 시작하여 148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
전담하며 입시사초 작업을 담당하였다. 즉, 국왕이 바뀔 마다 그 즉시 편찬된 것이다.〃
〃왕이 붕어한 이후에 춘추관 산하에 실록청이라는 임시기관이 생기게 된다. 사관들은 실록에 집중하여 편찬을 진행하게 되며 실록 편찬의 총책임자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 3대신 중 한 명이 임명되었다.
Ⅰ. 삼국사기
1. 들어가는 말
삼국사기는 김부식(金富軾)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인종 23)경에 편찬한 삼국시대의 정사이다. 다음에서는 삼국사기의 편찬과정과 삼국사기에 나타난 본기(本紀)와 열전(列傳), 지(志) 등을 분석해 봄으로써 그 사료적 가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삼국
ⅰ. 개관
국사편찬위원회는 민족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일제침략에 의하여 단절된 한국사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 역사를 연구·편찬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의 공적인 사료연구 편찬 기관이다. 1946년 3월에 창설된 이래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 1,000여
편찬의 열의를 보였을까? 성과 본관 문제는 신분사회에 있어 혈통의 귀천과 가격(家格)의 높고 낮음을 판정하는 기준이 됨은 물론, 응시·출사·승음(承蔭) 및 혼인에 이르기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 혈통과 가격을 증빙하는 근거가 바로 족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가문에서 족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