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인에서 영화감독으로.
2000년 말, 그가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성공한 후 전업 영화감독으로 나서기 직전에 발표했던 시집 <천일馬화>에는 이런 시가 나온다. <하루아침에 주사파는 서태지를 따라 부르는 래퍼가 되고, NLPDR은 방송국 PD가 된다./ 난 민중도 싫고 대중도 싫다. 은
(2) 문단 데뷔기
그는 1948년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부여 근처의 초등학교에 부임한다. 그러나 그곳에 전주사범에서 그와 대립했던 인물이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흘 만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1949년 9월에 신동엽은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도 묵묵
문단의 구심점이었던 「조광지사」사에 편집인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으며, 1931년 카프 1차 검거에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 났고 1934년 2차 검거시에는 2년여의 옥살이를 경험했다. 태평양 전쟁시 에는 강원도에 소재해 있다가 해방과 함께 월북, ‘북조선예술총동맹’을 이
문단으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다. 이후 1971년 대전 시인들과 6인시집『靑蛙集』, 1975년 시선집『강아지풀』, 1979년 시집『白髮의 꽃대궁』을 펴냈다. 대뷔 이전인 1953년부터 사후에 발견된 유고까지 전집『먼바다』에 실린 시가 160편인데 시력 30여년에, 누구보다 더한 ‘전업시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문단에 등단한다. 이후 향토적 서정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첫 시집『싸락눈』(1969)에서부터 이후 제2시집으로 『강아지풀』(1975), 제3집으로 『백발의 꽃대궁』(1980) 의 시집 등을 간행했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에는 간행 시집에 포함되지 않은 시들을 엮어 『먼바다』(1984)가 간행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