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에서 이상적인 시대로 들고 있는 요순시대(堯舜時代)에는 우(禹) 이후와 같은 세습군주체제의 형태가 아니고 천하 제일의 어진 자에게 왕위를 이양한다는 덕치(德治) 구현의 이상적 선위방법(禪位方法)이 구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교사상의 정립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세속화된 왕권이 세습체제
감화나 교육으로 이끄는 <정교합일(政敎合一)>의 이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력이나 법의 구속을 가지고 다스리는 것은 패도정치(覇道政治)라 하여 이를 배척했고 어디까지나 천도(天道)를 따른 인륜(人倫) 위에서 교화(敎化)함으로써 스스로 따르게 하는 왕도덕치(王道德治)를 주장했다.
유교의 경전인 사서오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학서를 통해 그 영역은 방대하다고 하겠지만 그 성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유교사상은 현세적 삶, 그 자체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유교에서는 사람 각 개개인의 주체적 역량을 실천이론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유교를 중심이념으로 하는 조선을 건설하게 된다. 또한 불교적인 생활 관습을 없애고 유교적인 생활 관습을 심기 위해 유교의 기본인 삼강오륜을 강조하고, 과거제도도 유교사상을 모르면 합격하지 못하게 하여 유학의 공부를 장려하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봤을 때 조선이 유교를 국교로 한 이
유교의 교화주의 즉 덕치주의 방면에 치우쳤고 근대 보통교육의 이상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저서 경세유포에서 보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은 부패한 봉건체제를 유지하려는 대책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건설을 지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향리세습제를 폐지하고 인재본위로 등용할 것을
조선조 건국과 존립은 유교사상의 확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회질서의 확립을 유교사상에서 찾았던 조선조는 처음부터 성리학을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하여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교화정책을 펴나갔다. 따라서 유교사상은 조선조 오백년간 윤리 도덕을 논하는데 기본사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
Ⅰ. 유교의 사상유교는 중국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사서오경을 경전으로 하여, 정치도덕을 실천하는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이다. 유학은 천명을 근본으로 하여 인의예지의 덕을 강조하므로, 조선시대에는 자기 자신을 닦고, 인간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함으로써 종교의 경지에까지
그리스도교식 결혼식이 유행하고 있다.
장묘 관습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조상 숭배 및 사자에 대한 관념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데 한국의 경우에는 조상 숭배사상은 유교의 영향으로 효의 이념과 결합하여 강화되었으나, 일본의 경우 불교의 영향으로 개념과 결합하여 관념적으로만 존재한
유교이다. 중국의 진독수는 1916년 유도를 중국의 국교로 만들자는 강유위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유도는 신과 사후세계와 종교적 의례가 없으므로 종교가 아니다”고 하였다. ‘religio’의 개념으로 보면 유도뿐만 아니라 원시 불도나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신념체계들은 종교라고 할 수 없다. 동
유교, 도교, 불교 이 세 가지 종교로 압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중국 종교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3대 종교 -즉 유교, 불교, 도교-와 관련한 연구는 필수불가결하며 종교의 사회적 현상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의 본론에서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