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學)이 있겠는가? 시가 심학(心學)에 긴요하지 않다고 여겨서 이를 읽지 않고자 한다면 큰 잘못이다.”라고도 했다. 김홍규, 위의 책, 재인용, 228쪽.
이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바는 지와 도의 확립은 가치가 있는 문학의 근거이자 최고의 목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지와 도는 마치 주희
가리켜 정주학(程朱學)이라 하고, 명대철학은 왕양명(王陽明)과 육상산(陸像山)의 철학을 가리켜 양명학(陽明學)이라 한다. 또한 양자를 비교하는 측면에서 전자를 리학(理學)이라고 하고 후자를 심학(心學)이라 한다. 이런 철학적 흐름은 이전 시대에 비래 새로운 것이었고, 공맹(孔孟)의 사상과도
理學的) 요법을 비롯하여 여러 진료과목이 총력을 다하여 장애를 입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하는 노력의 과정이고, 다른 한 면은 이같이 이학적 처치를 마친 자에 대하여 사회전체가 능력을 다하여 신체적, 정신적, 또는 직업적, 경제적으로 자립시키려고 하는 광범위한 과정이라 하였다.
그리
理學), 의리(義理)지학 등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명칭은 성리학의 실천적인 부분을 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은 의리의 실천까지 강조하는 성리학을 도학(道學)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도학은 실천적인 성리학을 의미한다. 이러한 도학은 조선시대의 사회 전반에 영향은 실로 크다. 본
理學)지상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부문의 체제를 정비하여 가는 과정에서 신분제 정비 작업의 하나로 생각될 수 있고, 주자학의 정통론에서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일 수 도 있으며, 나아가서는 한정된 관직에 대한 대비책으로 양반 신분의 무제한한 수적 증가를 억제하려는 의도
理學)이라고도 한다. 또 이전의 유학과는 다른 새로운 유학이란 의미에서 신유학이라고도 하며, 송대에 만들어졌다고 하여 송학이라고도 한다. 또, 주자가 집대성하였다고 하여 주자학이라고도 하고, 정이와 주자를 같이 불러 정주학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은 주역과 중용을 위주로 새로운 학풍을 열었
. 실 학
조선 후기 이학(理學:성리학)과 예학(禮學)으로 대표된 당시의 전통유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유학의 한 분파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선각적으로 일어난 근대의식과 민족적 자각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 형이상학적 공리공론에 치우쳐 있던 성리학에 대한 반동으로 실사구시(實事
理學) 편중에서 탈피한 개신유학' 혹은 '민족의식과 근대지향의식에 충실한 개신유학'이라는 뜻으로 전용하여 그것이 일반에 통용되는 한 괴이한 것은 아니며, 이와 같은 전의(轉意)는 이미1930년대 이래 수십 년 간 대체로 순조롭게 일반에게 받아들여져 왔다. 조선 후기 실학이 근대지향의식과 민족의
다른 말로 ‘宋學. 性理學. 理學. 朱子學. 程朱學. 正學. 道學. 실학(주자 자신은 불교의 ‘허학’에 대치하여 ‘실학’이라 일컫기도 했음)’라고도 한다.
ꊱ 배경 ; 수․당 시대에 도가와 불가가 융성했는데 그 경향은 신비적이고 향락적이었다. 중국에는 유교적 성향이 가진 왕이 거의 없어서
理學)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유학의 형이상학적 측면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송이전의 원시유학이 현실적이고 형이하학적이었다면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주자학은 관념적,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분히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희는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