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진과 박영희의 내용 ․ 형식 논쟁이다. 이 논쟁은 김기진이 박영희의 작품 「철야」와 「지옥순례」를 비평하면서 시작하였는데 논쟁의 핵심은 바로 예술의 내용과 형식, 이 양자 중에 어느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이다. 김기진은 박영희의 두 작품을 평가하면서 계급적 의식을 가진
1925년경 순수한 창작의욕과 예술성을 지향하지 않고,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혹은 일정한
사상적, 사회적 경향으로 기울어져 대중을 그와 같은 방향으로 계몽하고 유도하자는 목적
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대표적인 잡지는 <개벽>(1920년)이며, 김기진과 박영희의 작품은 대부분 이 잡지를 통해
김기진이 1923년 『개벽』지에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를 연재하여 프로문학의 막을 열었다. 여기에 박영희가 합세, 프로문학운동을 적극화시키면서 1925년 7월에는 카프가 조직되고 최서해, 이기영, 조명희, 임화 등의 활동이 1920년대 말까지 왕성하게 나타났다.
국내 문예운동 측면에서는 1919~1920
1930년대 프로시론
<차 례>
1. 들어가며
2. 30년대 프로시론의 단초 - 김기진의 단편서사시론
3. 30년대 프로시론의 주요 양상과 특성 - 임화의 시 론(감상 배격과 객관적 형상화)
4. 30년대 프로시론의 의의와 한계
5. 나가며
※ 참고문헌
1. 들어가며
시와 현실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데 있어서 1930년대 리얼리
김기진, 「今日의 文學, 明日의 文學」(『開闢』, 1924. 2)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문단 초기에 기존 문학에 나타난 추상적 현실과 그 대응 방법에 계급의식을 내세운 것이 바로 한국 프로문학의 시작으로 볼 있을 것 같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성공과 1차대전 전후의 불안으로
김기진이 토월회의 귀국 2차 공연(1923년 9월)이 끝난 후, 동경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백조」에 가담하면서 파스큘라 등장의 실마리가 된다. 「백조」는 김기진이 가담한 후 3호를 발행하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면서, 박영희, 안석영, 석송, 이익상, 김기진, 김복진, 연학년 등이 새로운 동인을 구상
1) 김동인 (金東仁, 1900∼1951): 개인O, 당대의 삶·세계X → 개인적 삶에만 치중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이 모두 인간의 위대한 창조적 정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예술은 완전한 삶의 새로운 창조 → 소설의 근본 과제를 참다운 인생의 창조, 이렇게 창조된 인생
은 현실적 상황과 관계없이 독자
序論
문학은 그 당시의 사회 ․ 환경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문학 작품 속에는 당대의 사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며, 또 그런 사회로 인해 새로운 문학 방식이 사조로서 구축되기도 한다. 1920년대 우리 문학계 역시 시대적 배경을 따라서 일제의 검열을 피하면서도 항일 요소를
1. 기존연구 검토
박영희의 문학사 혹은 비평사적 평가는 비교적 불우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평가의 정점에는 ꡐ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ꡑ이라는 유명한 전향문구가 항상 가로놓여 있다.는 임규찬의 말로부터 이 선언을 발췌한 원문인『最近 文藝理論의 新展開와 그 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