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매우 풍요로워서 정철에 버금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3권 2책으로 이루어진 『노계집』과 필사본 등에 실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시가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비록 시조를 즐겨 지어 완전히 생활화했지만, 국문학사상 의의는 가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문학의 대두와 실학의 영향으로 평민계급이 참여하는 확대된 향유계층으로서 주의식, 김유기, 김성기, 김천택, 김수장 등을 작품과 함께 소개 하며 윤선도 이후에 시조문학을 색다른 방향으로 김천택과 김수장이 중심이 되었다고 하였다.
김천택, 김수장 이후 시조문학은 창작이 보이지 않다가 조선
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조선 중기 무신 겸 시인.
박인로(1561∼1642)의 자(字)는 덕옹(德翁), 호(號)는 노계·무하옹(無何翁),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영천 출신이다.
그는 정철,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時歌人)으로 꼽힌다. 문학사에 가장 많은 9편의 가사를 남겼고 시조 67수, 한시 110
문학이 중세의 세계보편사상과 조응하여 고려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보편화되는 것이다. 이 당시 장르와 장르적 특성을 살펴보면, 향유계층에 따라 속악가사와 경기체가, 어부장가, 시조, 가사가 있다. 전자(前者)인 속악가사는 민요와 같이 서민에서부터 왕과 문벌귀족이 향유하는 궁중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