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이 태어나활동 하던 이 시기에는 특히 같은 선종과 교종을 통틀어 화엄종과 법상종을 비롯한 모든 종파의 갈등이 심화 됐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천은 원효를 해동보살로 추존하여 화쟁사상을 기반으로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종파싸움을 하는 불교계의 통합을 내세웠다. 의천
불교는 국왕의 보호에 점점 의존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종래의 부정적이거나 계약설적인 국왕관을 탈피하고 새로운 군주상을 정립하여 나갔다.
기원전 3세기에서 4세기경 마우리아 왕조가 출현하여 인도대륙을 통합하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자, 이를 반영하며 전륜성왕설(轉輪聖王說)이 등장하였
신라, 백제와 함께 삼국 시대를 구성하였던 고구려의 국가적 성격은 중앙집권적 귀족 국가로 국토는 왕토이며 모든 국민은 왕의 지휘하에 있었으며 군사 조직을 이용하여 지방의 행정 조직을 편성하였기 때문에 지방 군대를 조직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고구려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영토를 확대할
Ⅰ. 나말여초의 시대적 배경
신라 中代를 마감하고 하대에 접어들면서 진골귀족들간의 권력 다툼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혜공왕 때의 대공의 난, 헌덕왕 때의 김헌창의 난, 흥덕왕 사후 일어난 상대등 김규정과 시중 김명의 대립은 불과 3년 사이(836~839) 희강왕․민애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