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Borges y el tango
탐정소설이라는 장르의 시각에서 보면, 세 번째 단락에서부터 모든 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살인자를 추리하게 하는 문학적인 허구이다. "...그를 마주친 것은 단 세 차례에 불과하다. 그것도 하룻밤에..." 그러나 이 장치는 작가의 재능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은
1. “젊은이들이여, 보르헤스를 죽이시오(Jóvenes, matad a Borges)ꡓ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에 머물렀었던 폴란드의 작가인 뷔톨르 곰브로비치(Witold Gombrowicz)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면서 유럽행 배 위에서 부두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세대가 보르헤스의
1. Julio Cortazar(1916∼1984)
Julio Cortazar는 아르헨티나 외교관의 아들로 1914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 후 네 살 때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마리아노 아코스타 사범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기도 하고도 서회의서에서 5년간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페론 정권 가
(1)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 19세기 유럽에는 실증주의와 과학존중 사상이 팽배하였다.
· 이러한 분위기의 일환으로 낭만주의와 대립해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
하려는 움직임인 사실주의가 나타났다.
·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성공으로 19세기에는 항상 객관성이 강조되었다.
·
Ⅰ. 서론
Rapoport(1970:3-5)는 현장연구를 “특정 문제상황에 연루된 사람들이 당면 현안 혹은 실제적 관심거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동시에 공통적인 협업을 통해 사회과학 자체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연구”로 정의했다. Kemmis와 McTaggart (1982)는 현장연구를 “교육적인 상황을 포함한
Borges의 삶과 문학
- 9 살때 번역서 내 독서로 시력 잃은 ‘문학계의 베토벤’
그는 세계 문학계의 베토벤이었다. 멀어져가는 청력을 부여잡고 베토벤이 세계적 악성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처럼, 보르헤스는 희미해지는 시력을 움켜쥐고 '20세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섰다. 엄청난 시련을 강요당했건만,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 작품 정보
1941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El jardin de senderos que se bifurcan)>이라는 소설집이 발간되었고,
1944년에는 여기에 작품들을 추가해서 <픽션들(Ficciones)>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우리나
#1. 접속
나는 얼마 전 우연한 계기를 통해 ‘틀뢴’이라는 이름의 한 위대한 검색엔진을 발견하였다. 어떤 기괴한 주석서를 읽고 현기증과 두통에 절어 깜빡 잠이 들었을 때, 꿈결에(그러니까 순전히 우연하게) 이 사이트로 미끄러져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 ‘틀뢴’에 접속하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
보르헤스의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실제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등장 이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푸코적인 해석틀로 봤을 때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특히, 소설 속에서의 ‘회사’같은 것은 그저 단순히 국가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푸코적 권력으로 봐야 더욱 그 성격
“<나는 다양한 미래들에게(모든 미래들이 아닌)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남긴다>”(“픽션들”, 158). 보르헤스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취팽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보르헤스에게 있어 세계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무한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