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중국 근대사는 1840년 아편전쟁에 의한 치욕의 역사로 시작된다. 그 후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나라의 치욕을 갚고 부국 강병으로 중국을 진흥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사회 개혁 사상이 마치 밀물처럼 나타나게 된다. 그 조류는 너무나 왕성하였고 활발하였다. 앞서 주장하였던 사회개혁 사상이
上書)라 했는데, 한나라 때 예의(禮儀)가 정비되면서 4품(品)이 있게 되었다. 그 세 번째가 표인데, 당시에는 다만 청(請)을 아뢰는 데 사용되었을 뿐이다. 후세로 내려오면서 그 쓰임이 점차로 광범위해졌다. 서사증, 『문체명변서설』, 표, “按字書: ‘表者, 標也, 明也, 標著事緖使之明白以告乎上也.’
시작.
1885 6월, 프랑스와 天津조약 체결.
1886 7월 영국과 버마조약 체결.
1888 10월, 康有爲 제1차 上書.
1893 10월, 漢陽製鐵所 완성.
1894 8월, 청일전쟁 개시. 11월, 孫文, 하와이에서 興中會 결성.
1895 4월, 시모노세키조약 조인. 삼국 간섭.
5월, 강유위 등 公車上書.
:托?
한소제는 이미 옥새와 서신을 수여하고 생각건대 반드시 고명을 가졌다고 하니 유단이 이 말을 함은 분명히 핑계이다.
乃復遣中大夫入都上書, 請就各郡國立武帝廟。
내부견중대부입도상서 청취각군국입무제묘
다시 중대부를 도읍에 보내 서신을 올려 각 군과 나라에서 무제사당에 오게 했다.
上書陳述, 毋從禪言, 且請順帝往朝太后。
합피타감동 인즉상서진술 무종선언 차청순제왕조태후
이합은 그에게 감동당해 서신을 올려 진술하여 진선의 말을 따르지 말고 순제가 가서 태후를 조회하길 청했다.
時已歲暮, ?忽逾年, 改元永建, 下詔大赦, 順帝乃率百官往朝閻太后。
시이세모 숙홀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