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배경
1)송(宋)의 개관
중국 역사상 당(唐)·오대십국(五代十國)에 이어지는 왕조(960∼1277)를 宋이라한다. 처음 개봉(開封)에 도읍하였으나 1126년 정강(靖康)의 변(變)으로 강남(江南)으로 옮겨 임안(臨安:杭州)에 천도하였다. 개봉시대를 북송(北宋), 임안시대를 남송(南宋)이라 한다.
오대(五代)
1. 들어가기
1-1. 왜 재조명인가?
우리들의 머릿속에 ‘조조(曹操)’라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강태권에 의하면, 후세 사람들은 ‘조조 같은 놈’이라는 말을 들으면 인상을 찌푸리게 될 정도로 간신이나 의리 없는 인물로 대표되는 인물이 바로 조조이다. 심지어 국어사전
司馬光)에 이르러 비로소 통사(通史)로서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 편찬되었다. 이를 계승하여 이도(李燾)의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 등의 우수한 편년체의 사서 편찬이 계속되었고, 연월에 따르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기사의 분단(分斷)을 보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사본말체(紀事
司馬光,1019-1086)을 수령으로 하는 구법당(舊法黨)과의 대립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신법당(新法黨)에서 재상이 나라 정권을 장악하면 구법당의 인물을 중앙이나 지방의 관청에서 물리치고, 반대로 구법당이 천하를 장악하면 신법당을 일소하는 정변이 되풀이되었다.
이와 같이 북송기(北宋期
당송산문 - 애련설
1. 작자 - 주돈이 周敦燎 [1017~1073]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다. 도주(道州:湖南省 道營縣)에서 출생했다. 지방관으로서 각지에서 공적을 세운 후 만년에는 루산[廬山]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 은퇴했기 때문에 문인들이 염계선생이라 불렀다. 북송의 사마광(司馬光)왕안
司馬光)여공저(呂公著) 등의 추천으로 국자감 교수가 되었고, 이어서 비서성 교서랑(校書郞)숭정전설서(崇政殿說書)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왕안석(王安石)소식(蘇軾) 등과 뜻이 맞지 않았고, 당화(黨禍)를 입어 쓰촨성[四川省] 푸저우[州]로 귀양간 일도 있다.
학자로서의 그는 《역경(易經)》에 대한 연
司馬光)의 역사서인 〈자치통감 資治通鑑〉의 축약과 재편집을 지휘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1172년 <자치통감강목>이 완성되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읽혔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최초로 간행된 중국역사서로서 J.-A.-M. 무아리아크 드 마야가 쓴 〈중국통사 Histoire generale de la Chine〉(1777~85)의 토대가
당송산문 - 애련설
1. 작자 - 주돈이 周敦燎 [1017~1073]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다. 도주(道州:湖南省 道營縣)에서 출생했다. 지방관으로서 각지에서 공적을 세운 후 만년에는 루산[廬山]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 은퇴했기 때문에 문인들이 염계선생이라 불렀다. 북송의 사마광(司馬光)왕안
간결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쓰는 효과가 있는 문체여서 역사 서술을 하는데 적절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했을 당시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자치통감(資治通鑑)』을 처음으로 구해 와서 이를 통독했는데, 이는 후에 김부식이『삼국사기』를 편찬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Ⅰ. 대학(유교 경전)의 의미
유교(儒敎) 경전에서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정통(正統)으로 나타내는 <사서(四書)> 중 중요한 경서(經書). 본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송(宋)의 사마 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다. 그 후 주자(朱子)가 《대학장구(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