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
1. 노계의 생애
2. 노계의 문학세계
1. 노계의 생애
朴仁老(1561~1642)의 生涯를 (盧溪集) 卷二에 收錄되어 있는 것으로 노계 사후 142년(1704) 뒤에 鄭葵陽이 쓴 ‘行狀’과 李鼎秉이 지은 ‘墓碣銘幷序’를 비롯한 餘他을 참고하여 考察하면 다음과같다.
이제 까지 그의 生涯에 대해서 言及한 것을 보면
行狀」에서 보이듯이 퇴계 선생은 회재의 논변의 공로가 異端의 邪說을 물리치고 吾道의 本源을 천명한 데 있다고 칭송하고 그에게 立言垂後의 공이 있다고 하였다. 『退溪集』 卷 49, 「晦齋李先生行狀」
물론, 율곡의 회재에 대한 평가 등과 같이 회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으나 그의 논변과
가석방 :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에 있는 사람이 그 행장(行狀)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하여 나머지 형벌의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
강행법 : 당사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절대적·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으로, 헌법·행정법·형법·소
行狀을 적은 諡狀을 禮曹에서 이를 심의한 뒤 奉常寺를 거쳐 弘文에 보내어 諡號를 정하게 된다. 諡號를 정하는 법으로는「周公諡法」이니 「春秋諡法」이니 하여 中國 고대 이래의 諡法이 많이 인용되었던 듯하다. 諡號에 사용된 글자는 文忠貞恭襄靖孝莊安景翼武敬 등등 一백二○자인데, 한자 한자
망처숙부인김씨행장(亡妻淑夫人金氏行狀) 행장(行狀): 죽은 사람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또는 아들이 죽은 사람의 세계(世系)·성명·자호·관향(貫鄕)·관작(官爵)·생몰연월·자손록 및 언행 등을 서술한 한문체의 하나이다. 이는 후일 사관들이 역사를 편찬하는 사료 또는 죽은 사람의 명문(銘文)·
산문의 영역확대와 소설의 출현
동문선
조선 전기의 사서
야사(野史), 잡기(雜記), 잡록(雜錄)
국문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글. 전(傳), 행장(行狀), 묘지(墓誌).
몽유록(夢遊錄)
설화
금오신화
소설
1. 동문선
-활자본, 130권 45책. 1478년(성종 9)에 성종의 명을 받아 서거정(徐居正),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
서민화한 처지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신분제 사회에서 그의 미묘한 위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양반으로서의 최소한의 교육은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13살 때 지었다는 한시 「대승음(戴勝吟)이 「행장(行狀)」에 인용되어 있고 문집에도 실려 있다.
行狀)>에 나타나 있는데 “어머니가 임신 중에도 이상한 징후가 많았으며, 자랄 때는 사리에 밝고 통달함이 신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문자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해했으며, 남들이 서사(書史)를 읽으면 한번 듣고 바로 기억했다.”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그가 천부적으로 문학에 소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