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1. 밀양박씨의 유래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이 밀성(밀양)대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밀양 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 제일 종가이며 밀양 박씨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나뉘어 지고, 밀양 박씨 내에서도
경명왕(景明)(917~924) 55대 경애왕(景哀)(924~927) 56대 경순왕(敬順)(927~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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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왕 : 대공의 난, 김지정의 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웠으며 선덕왕에게 피살됨.
애장왕 : 13세에 즉위. 섭정하던 숙부 김언승(金彦昇)에게 왕위 빼앗기고 시해됨.
헌덕왕 : 조카를 죽이고 왕이됨.
신무왕 : 민애왕을 죽이고 왕이
일이 아주 많았다. 그러므로 나라가 건립된 이래로 늘 삼사三祀의 하나로 했고 그 차례도 여러 망제望祭의 위에 있었다.
제54대 경명왕은 매 사냥을 좋아했는데 일찍이 여기 올라가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렸다. 때문에 신모에게 기도했다.
“만약 매를 찾게 되면 마땅히 작爵을 봉해드리겠습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기 시작하였는가. 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인 5만∼10만 년 전부터 매장 풍습이 정착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이전에도 죽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했다는 학설은 존재하지만 검증이 쉽지 않다. 그만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장례는 지극히 보수적인 문화이다. 장례
소인은 파주-임진강-개성 일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함양박씨 박정미입니다. 소인의 가문은 임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국하신 박희령 장군의 후손으로, 조상의 공으로 인해 임진강 일대에서 장사하는 데 많은 편의를 누리고 있습니다. 올 초에 관아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1. 고구려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동북아역사넷(http://contents.nahf.or.kr).
고구려의 전성기는 누구한테 물어봐도 광개토대왕, 장수왕이라 말할 것이다. 광개토대왕 때 갑작스럽게 전성기가 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
Ⅰ. 호족
ⓛ 호족의 등장과 나의 서술방향
신라말 ․ 고려초의 사회를 주도해 나간 세력은 지방에서 등장하였던 호족이었다. 호족은 신라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진성여왕대로부터, 고려의 지방관이 파견되기 시작하는 성종대 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지방사회의 실질적인 통치
삼국시대
(백제)
1. 익산 미륵사지 (益山 彌勒寺址)
사적 제150호.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소재. 백제 무왕 때 세워진 사찰.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 왕이 왕비와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
((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
이 탑은 본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터에 있었다 하나, 확실한 근거가 없다. 원래 위치에서 여러 차례 옮겨졌는데, 1914년에 탑골공원으로 옮긴 것은 확실하며, 경복궁 뜰로 옮겼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자리잡고 있다. 탑의 양식은 이른바 팔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