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의 상상세계를 조명하고자 하는 우리로서는 그 둘을 가르고 있는 엄청난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야기한 또 다른 많은 난점들까지 안아 들여야 한다. 그 둘은 어떤 점에선 서로 판이하다고도 할 수 있는 패러다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두 체계를 가능한 한 구조적으로 대응시
1. 보들레르의 삶
샤를르 보들레르는 1821년 4월 9일 프랑스와 보들레르를 부친으로, 카롤린느 드파이를 모친으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부친은 자유주의 사상에 젖은 지적인 귀족으로,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모친은 영국에
1. 생애
- 두 명의 아버지, 그리고 보들레르보들레르의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는 1819년에 젊은 여자와 결혼했다. 보들레르는 그들의 유일한 자식이었고, 어머니는 타고난 열정적 기질로 외아들에게 헌신적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하여 상당한 연금을 받게 된 아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의 문예사적 의의는 대단하다. <악의 꽃>을 읽지 않고서는 베를렌느도 말라르메도 랭보도 있을 수 없다고 한 발레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19세기 후반 문예사조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상징주의의 선구자로서 살아생전이나 사후에나 “보들레르파”라
1.현대시의 아버지
보들레르는 현대시의 아버지로서 19세기 후반에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시인이다. 당시와 그 후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러 나라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시인이다.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의 지나친 감정의 토로와 웅변적인 표현에 권
저명한 시인이자, 비평가인 폴 발레리는 그를 이렇게 절찬했습니다.
“보들레르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뛰어난 시인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
그의 서정시는 후에 다음 세대인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지만,
3. 하늘과 바다
바다는 영원성의 상징이다. 모든 과거와 미래를 내포하여 모든 가능성과 재생, 그리고 탄생을 상징하는 바다는 위의 시에서 그 더 넓음과 파도의 율동감에 의해 시인의 상상의 공간을 무한히 넓혀준다.
보들레르는 바다가 무한성의 관념과 역동성의 관념을 동시에 주기 때문에 바다
보들레르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미당의 작품은 우리 근대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양적으로는 1000편에 가까운 작품 수와 작품의 질적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을 보장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명파 시인에 해당되며 영원주의, 긍정적 낭만주의, 심미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의 작품
보들레르
(이어서)내 넋은 여전히 말이 없다.
"아니면 바타비아가 더 네 마음에 들지도 몰라? 거기에 가면 열대의 아름다움과 융합한 유럽의 정신을 발견할거야."
한마디도 없다. 내 넋은 죽었는가?
"그러면 너는 네 고민 속에서 밖에 즐거울 수 없을 정도로 허탈증에 빠져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Spleen II
Rien n'égale en longueur les boiteuses journées,
Quand sous les lourds flocons des neigeuses années
L'ennui, fruit de la morne incuriosité,
Prend les proportions de l'immortalité.
— Désormais tu n'es plus, ô matière vivante!
Qu'un granit entouré d'une vague épouvante,
Assoupi dans le fond d'un Sahara b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