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곡과 속미인곡 두 작품을 자세하게 살피도록 하겠다.
Ⅱ. 송강의 문학과 사상
1. 송강의 삶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다. 본관은 연일, 자는 계함, 송강은 호다. 돈영부 판관 유침의 아들로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누이와 계림군 유의 부인인 둘째누이로
Ⅰ. 가사(가사문학) 도덕가 작품분석
<도덕가>에서는 ‘벗님네’라는 현상적 청자를 담론의 서두에 설정하여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이로써 담론은 특정한 화자가 특정한 인물을 향하여 전언한다는 구체화된 발화 상황을 갖추게 되며, 주제제시적 담론 의도에도 불구하고
성산별곡>, 박인로의 <사제곡>, <노계가> 등이 있다.
2) 주요 작자층
강호가사는 주로 조선 전기 때 사대부들에 의하여 지어졌다. 강호가사의 ‘강호’는 가사의 향유 공간이자 사대부의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강호가사는 사대부 가사와 서민 가사가 분류되었을 경우, 사대
성산별곡>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되며, 세련된 언어와 다양한 수사법 등이 뛰어난, 가사의 효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면앙정가>가 도교적 요소를 드러내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1) 쉴 사이 업거든 길히나 젼하리야. 다만 한 靑藜杖(청려장)이 다 므듸여 가노매라
-> 쉴 사이도 없는데
성산의 기슭아래 우거진 죽총(竹叢), 송강(松江), 창계(蒼溪)의 기석(奇石), 구렁 위의 누정(樓亭), 이른 봄의 설중매, 겨울이 오면 언제나 볼 수 있는 명봉산 위의 학의 무리, 이러한 자연의 풍경은 그의 뇌리에 깊게 인상지어져 〈식영정 이십영〉<성산별곡〉〈전후미인곡〉등의 국문 시가와 수 많은 한
살아간 인물이며, 협애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청절한 인물이었다.
정철은 을사사화로 호남가단과 인연을 맺었고, 그의 잦은 치사는 그의 문학적 완성도를 위하여 필요한 밑거름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성산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훈민가 등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성산별곡>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어 강호가도의 대표적 작품으로 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접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타난 자연은 한가롭게 멈추어 있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며 생동한다 자연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그 생동감에 동참하는 분망함이야 말로 다른 무엇이 아니고 풍류이다 풍
Ⅰ. 가사문학(가사) 원한가 작품분석
<원한가(怨恨歌)>는 17세 처녀가 백발의 늙은이를 남편으로 섬기게 된 불우한 처지를 한탄한 가사이다. 꽃같이 젊은 부부를 불 때는 시기심이 발동하여 평소에도 못마땅하고 원수만 싶던 늙은 남편이 더욱 미워지는, 기박한 자기 신세의 한스러움을 토로하고 있다.
『관동별곡』의 작자인 송강에게 있어서 관동지방의 여행은 정치인으로서 강원도에 관찰사로 원주에 임명된 후 3월에 부임해서 그 지역을 유람한 것이다.『관동별곡』의 성격에 대한 기존 논의들은 대체로 충군애민의 유가적 이념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많은데, 이는 당대 지배이념에 충실했던
별곡(靑山別曲)> -작자미상
- 상략 -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쟝글란 가지고 /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날아가는 새(갈던 논밭), 날아가는 새(갈던 논밭)를 보고 있도다.
이끼 묻은(녹쓴) 쟁기(연장)를 가지고 날아가는 새(갈던 농토)를 바라보노라. ]
이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