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른 신하에 비해 청렴하게 산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안숭선과 세종의 대화를 끝으로 황희 부분을 마치려고 한다.
안숭선이 대답하였다.
“교화와 석균의 일은 진정 황희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정사를 의논하는데 있어서 황희만큼 깊은 계책과 원대한 생각을 내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숭선에게 명하여 장영실에게 호군의 관직을 더해 줄 것을 의논하게 하다.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행 사직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대 원나라의 소항주 사람이었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
안숭선에게 명하여 장영실에게 호군의 관직을 더해 줄 것을 의논하게 하다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행 사직(行司直) 장영실(蔣英實)은 그 아비가 본대 원(元) 나라의 소·항주(蘇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
불러 천문 관측에 대해 토론을 벌이며 그의 능력을 검증하였다. 그 후 곧바로 장영실의 비상한 능력을 알아보고 권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정5품인 상의원이라는 파격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한다.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안숭선 등이 아뢰기를, "이제 약노가 이미 문초하는 형장을 11차례나 맞았고, 의금부에서 또 15차례나 형장을 쳤으니, 어찌 그 실정을 알기 위하여 애매한 일에 그 같은 혹독한 형벌을 할 수가 있사옵니까. 또 옛사람이 말하기를, 죄가 의심스러운 것은 아무쪼록 경하게 해야 한다. 하였사오니, 신 등은 생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행 사직(行司直) 장영실(蔣英實)은 그 아비가 본대 원(元) 나라의 소·항주(蘇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임인·계묘년 무렵에
김화의 살부(殺父)사건과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으로 훈민정음 창제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에 관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만 나온다. 세종 25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이 창제됐다는 것, 세종 28년 9월 29일 훈민정음 반포, 그리고 세종 28년과 29년 하급 관리 선발 시험
기말report : 세종실록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 또는 내용 조사와 자신의 견해
공법개정(貢法改正)
세종은 작은 일에도 신하들과 상의를 했다.
※ 들어가기에 앞서
세종은 국가의 문제를 널리 물었고, 말을 잘 받아들이며, 그것을 국정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또한 그렇게 결집된 지혜와 대책을 심사숙고하고
세종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1. 세종의 민주적인 정치
세종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백성, 신하들과 개방적이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세종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권위적이었던 선대왕들과는 다른 지극히 민주적인 정치 마
세종시대의 신분제도
■ 서 론
고려 말 권문세족들은 대규모의 사유 토지를 소유했으며, 양민을 불법적으로 노비화 시켜 거대 농장의 노동력으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소작인들로부터 전통적인 소작세 뿐만 아니라 부역까지 수취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공적인 경제활동을 대신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