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근ㆍ현대의 불교
조선조 500년간 억압을 받았던 불교계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또 위축되었다. 개항이 이루어진 다음 해인 1877년부터 일본의 침략과 더불어 일본 각 종파의 승려들은 국내 곳곳에 포교당과 사찰을 건립하고 국내의 승려들을 포섭 또는 개종시키기 위해 온갖 노
(2) 백제
《삼국사기》에
① 침류왕 즉위년 9월에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에서부터 옴에 왕은 궁중에 맞아들여 예를 베풀어 공경하니 불법이 이에 시작되었다.
② 2년 2월 한산(漢山)에 절을 창건하고 10명의 중이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난타가 백제를 비로소 깨우치다. 백제 본기에
침류왕 1년) 동진(東晋)을 거쳐 온 서역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385년에는 한산(漢山)에 절을 지었다고 하니 이때 불상을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실제 불교의 발전은 백제가 수도를 웅진(熊津)으로 옮기고 중국 南朝와 정치․문화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시작된 듯하
Ⅰ. 개요
백제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AD384)이다. 백제는 침류왕 원년 7월에 동진(東晋)에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한 호승(胡僧) 마라난타는 귀국길에 오른 백제사신과 함께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고 나서 오랫동안 불교관계기사가 나오지 않지만, 사비시대
침류왕의 죽자 그 동생 진사가 태자 아신이 어리다는 구실로 왕위에 올랐다. 『日本書紀』에는 진사왕이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三國史記』에 그의 인문됨을 “강용하고 총명하며 지략이 많았다”고 한점으로 보아 진사가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짐작된다. 盧重國은 왕
침류왕 원년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오면서부터이다. 이 또한 국가가 앞장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삼국사기』침류왕조 기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왔던 사건 2개월 전에 백제는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 기사를 통해 호승 마라난타는 백제
침류왕 때 중국 동진으로부터 승려 마라난타가 전래함. (384년)
삼국불교의 성격, 왕실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짐.
고대 왕국의 사상적 지주로서의 구실, 왕실 중심의 불교 행사가 열리거나 거대 규모의 불교 건축물이 지어짐.
현세 구복, 호국 불교.
서역과 중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쓰임,
침류왕 1년(384)에 서역의 포교승인 마리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으로부터 백제 사신과 함께 들어와 전교함으로써 불교가 시작되었다. 백제에서는 성실정과 함께 계율을 중시하는 율종이 크게 발달하였다. 성왕 4년(526)에 겸익(謙益)은 인도에서 가져온 범본(梵本) 율부(律部)를 번역함으로써 백제 율
침류왕 원년(384)에 호승(胡僧)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왔을 때부터라고 한다. 마라난타 이후 초기의 백제 불교가 어떤 변천을 겪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고, 성왕 대에 이르러서 불교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기록에 나타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강좌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년
침류왕 때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들어오게 되면서였다. 이때 왕은 그를 맞이하여 궁중에 두고서 예(禮)로서 공경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서울에 절을 짓고 승려 열 명을 두었다. 이로부터 백제에는 왕실의 보호 하에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주서(周書)에 "승려와 절과 탑이 매우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