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통일신라시대는 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신봉하여 불교문화가 찬란히 꽃핀 시기이다. 현전 향가 작가의 상당수가 승려이기 때문에 향가는 특징적으로 불교문학적 성격을 지닌다. 〈원왕생가〉(문무왕대, 661~681)는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간절히 희구하는 기도의 노래이다. 불
Ⅰ. 개요
향가는 신라 때 생겨나 고려 때까지 이어진 노래로 현재 남아 전하는 것은 모두 25수인데 이중 14수는 삼국유사에 전하고 11수는 균여전에 전한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14수는 형식과 내용과 지은이가 다양한데 비해 균여전에 전하는 11수는 균여대사 한 사람이 지은 보현시원가 한 편만이 실려
Ⅰ. 개요
조윤제는 기사방법이 이두식 문자에 의해 표기되었으면 이것을 향가라고 전제하고, 향가문학의 성립연대는 부득이 그를 표기하는 이두문자의 발명연대에서 구하였다. 여기서 조윤제가 보는 이두의 발명 연대는 신라의 통삼기, 그렇다면 향가의 성립도 역시 삼국통일의 전후로 보는 것이다.
Ⅰ. 개요
신라향가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록은 실상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다. 『삼대목』의 편찬사실 등을 적은 『삼국사기』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우리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의존한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향가를 佛讚歌謠의 성격을 가진 노래로 단정하려는 경향도
Ⅰ. 풍요(신라시대의 향가)
1. 풍요의 원문과 해독
來如來如來如 오다 오다 오다
來如哀反多羅 오다 서럽더라
哀反多矣徒良 서럽더라 우리들이여
功德修叱如良來如 공덕 닦으러 오다
2. 풍요의 작품배경과 이해
≪삼국유사≫ 권4 ‘良志使錫’조에 실려 있는 이 노래는 선덕여왕 때 양지라는 비
Ⅰ. 신라향가 - 서동요의 배경설화
백재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가 과부로, 백제의 서울 남쪽에 있는 연못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뒷날 무왕이다. 워낙 위인이 그릇이 크고 도량이 넓어 장차 큰 인물이 될 바탕을 갖추고 있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향가(鄕歌) 14수>
4구체향가
☆서동요
[원문]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署童房乙
夜矣卯乙拘遣去如
[해석]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짝져두고
서동님을
밤에 품고 간다.
[내용]
서동이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신라의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동요.
[배경설
순수한 우리글이 없었던 때에 우리말로 된 노래를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향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쓰는 향찰로 표기되어 전한다. 〈서동요〉의 첫 구절 '善花公主主隱'은 '선화공주님은'으로 해독한다. '님 주(主)'는 뜻을 빌린 것이고 '숨을 은(隱)'은 음을 빌린 것이다. 향가의 해독은 관련자료
향가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이다.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되지 못하고 향찰 및 이두, 곧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표기되어 삼국 시대 말기부터 고려 초까지 유행하였다. 향가라는 명칭은 《삼국사기》 권11과 《삼국유사》 권5, 《균여전》등의 문헌에서 발견되며 사뇌가·두율가 또는 국풍·자국지가,
Ⅰ. 향가의 형식
향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로서 4구체, 8구체, 10구체의 형식을 가지며 연은 구분하지 않는다. 이 중 10구체는 향가의 최종 완성형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조윤제는 향가(10구체)의 형식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8구까지 주요 내용이 마무리되고 남은 2구에서 앞의 주의(主意)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