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婦女子에 의해서 開拓된 한 문학양식이다’라고 하였고, 조윤제는 조윤제, 『국문학개설』142면
‘嶺南地方으로 가면 부녀자간에 가사가 매우 왕성하여 한 여자가 수십편의 가사를 읊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자 중에는 곧잘 가사를 짓는 이도 있어...’ 라 하였으며 장덕순은 장
예학을 통하여 본 천주교, 개신교의 지방별 복음수용
1. 서론
우리나라에 儒學이 들어오면서 畿湖지방(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황해도)과 嶺南지방(경상도)은 다른 해석을 하여 기호지방에서는 율곡을 중심으로, 영남에서는 퇴계를 중심으로 하는 학파가 형성된다 儒學의 分派는 李滉, 曺植학파를 중심
嶺南學派)의 종조(宗祖)로 숭앙된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초명(初名)은 서홍(瑞鴻)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며, 호(號)는 퇴계(退溪)인데 ‘물러나 시내 위에 머무른다.는 뜻의 ‘퇴거계상(退居溪上)’에서 비롯되었다. ‘계(溪)’는 이황이 물러나 머물렀던 ‘토계(兎谿)’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
서원(書院)
1) 서원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서원이 처음 건립된 것은 1543년(중종 38)이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말 학자 안향(安珣)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효시이다. 그는 영남감사(嶺南監司)의 물질적 지원과 지방유지의 도움
嶺南歌)>를 지었고 76세 때에는 노계곡에 유거하면서 <노계가(蘆溪歌)>를 지었다.
이와 같이 노계는 임진왜란 때는 의병으로서 가정을 잊고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치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유학자들이 지향하는 충효와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면서 은거구도적(隱居求道的)인 삶을 살
嶺南) 합천군(陜川郡) 사람으로 영남에서 과시를 잘한다고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집이 가난하고 지체도 낮아 과시를 팔아서 살아갔다. 첫 번째 일화는 유광억이 어떤 권세가의 아들 대신 시험을 치러 진사(進仕)에 합격시킨 일을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두 번째 일화는 경시관(京試官)이 감
홍콩 링난(嶺南)대 중국정치 전문가인 폴 해리스는 “(티베트인들에게) 불행한 점은 중국은 티베트에 대해 철저하면서도 극단적으로, 또한 완벽하게 감정적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티베트 사태를 잘못 처리할 경우 자칫 무슬림들이 지배하는 신장(新疆)지역, 네이멍구(內蒙古), 대만으로
嶺南學派)와 기호학파(畿湖學派)로 분화되어 약 300여 년간을 당쟁(黨爭)의 시대로 이끌어 가게 된다. 이러한 사림파의 분화는 각 학파 간의 성향에 따른 서원관에도 차이를 발생시켜 서원의 배치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서원의 배향자가 속한 학파의 서원관에 맞게끔 서원은 그 건물을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