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滉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라 불릴 정도로 儒家사상을 총정리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는 몇 차례 벼슬길에 오르긴 했지만, 본디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나라의 부름이 있더라도 관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외직(外職)을 자청하여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생활을 즐겼다. 일
理通氣局說의 입장에서 人物性을 해석
性은 理와 氣의 合, 理가 氣속에 있어야 性이 됨
理는 독립적으로 性이 될 수 없음
人物性을 다른 것으로 파악
박세당,『思辨錄』: 인물성이 다른 이유 해석
권상하와 김창협이 조목별 검토, 인물성동이론 쟁점 대두
권상하 문하의 한원진, 이간 등
Ⅰ.서 론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퇴계학의 의의를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다. 1997년 말경에 세계적으로 홍보된 경제위기를 체험하는 한국은 온갖 사건, 기업 및 사회체제의 성패와 사회 전반의 생존상황을 좌우하는 조건들이 도의적 차원에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Ⅰ. 시대적 배경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이 펴졌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고려 충렬왕 때 안향에 의해 전해 져 온 성리학이 본격적인 이론 탐구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괄목할 만한 것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벌어진 사단과 칠정에 관한 논쟁과 이기의 해석
① 권근 (權近, 1352~1409) : 호는 양촌(陽村)
1. 조선시대 유학의 문형
→ 조선개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정도전과 함께 성리학을 기초로 교육의 기틀을 마련
→ 관학을 정비
→ 성리학에 바탕한 교육사상을 체계화
→ 불교와 도가사상을 이단으로 구분하여 배격 (효제충신과 수기치인의
4. 교육사상가
1) 권근(權近, 1352-1409)
-교육적 기초: 공(公) - 私가 없고 마음이 맑아 욕심이 없으니 이것이 정직
근(勤) - 게으르지 않고 허물이 없으며 언제나 부지런 하니 이것이 충실
관(寬) - 까다롭지 않고 모두가 인후함이니 이것이 군자의 덕이요, 선비의 덕
신(信
이 황
(李滉)
목차
생애의 개관
인간관
핵심사상
교육사상의 특징
현대 교육에 주는 의의
생애의 개관
동방의 주자(1501-1570)
조선시대의 석학(碩學)
정인군자(正人君子)
조선시대 선비상의 모범
*
동방의 주자로 일컬어 지는 이황(1501~1570)은 한국의 교육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501년(年) 경상도(慶尙道) 예안현(禮安縣) 온계리(溫溪里)의 8남매(男妹)의 막내로 태어난 이황(李滉)이 최고(最高)의 교육자(敎育者)로 인정(認定)받기까지는 어머니의 힘이 컸다. 이황(李滉)의 아버지 찬성공(功)은 이황(李滉)이 걸음마도 떼기 전(前)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자식(子息)들의
예학을 통하여 본 천주교, 개신교의 지방별 복음수용
1. 서론
우리나라에 儒學이 들어오면서 畿湖지방(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황해도)과 嶺南지방(경상도)은 다른 해석을 하여 기호지방에서는 율곡을 중심으로, 영남에서는 퇴계를 중심으로 하는 학파가 형성된다 儒學의 分派는 李滉, 曺植학파를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