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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487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조선(朝鮮) 후기(後期) 품관(品官) 집안과 그들의 삶 -전라도 만경현(萬頃縣)의 풍천임씨(豊川任氏)와 흥양현(興陽縣)의 수원백씨(水原白氏)를 중심으로-
안광호 ( Gwang Ho An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191~225페이지(총35페이지)
본고는 조선 후기에 전라도 萬頃縣에 살았던 豊川任氏와 전라도 興陽縣에 살았던 水原白氏를 통하여 品官을 지낸 인물이 살았던 집안의 삶을 살펴보았다. 이 두 집안에서 座首와 別監을 역임한 사람은 座首와 別監 이외에도 都監이나 監官, 面 단위의 尊位나 還上都檢督 , 里 단위의 戶籍別有司나 戶籍收單別有司, 그리고 代將이나 千摠과 같은 武任을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집안이 지역 사회에서 누렸던 삶의 모습은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조선 사회가 각 고을 마다 風俗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豊川任氏의 경우에는 전라도 萬頃縣 南一面 大木山里에 세거지를 마련하고, 자신들을 ‘化民’이라 칭하면서 先山, 宗畓, 그리고 齋閣등을 가지는 등 그 지역의 여느 양반 집안들과 유사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에 반하여, 水原白氏의 경우에는 鄕吏들이...
TAG 품관, 品官, 만경, 萬頃, 풍천임씨, 豊川任氏, 흥양, 興陽, 수원백씨, 水原白氏, Pumgwan, Mankyung, Pungchon Im lineage, Hungyang, Suwon Baik lineage
조선후기 서울 포전(布廛)이 남긴 기록의 조각들 -"정승모 문서"의 소개와 분류-
정승모 ( Seung Mo Chung ) , 이영훈 ( Young Hoon Rhee ) , 조영준 ( Young Jun Cho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227~256페이지(총30페이지)
이 글에서는 故 정승모 박사가 발굴한 조선후기 서울 布廛의 문서를 소개하고, 그 식별 및 분류에 관해 試論하였다. 향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심화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書誌的 특징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40여 장의 斷片으로 구성된 ‘정승모 문서’는 조선후기 서울의 포전 조직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생산된 문서가 뒤섞여 있음을 밝혔다. 포전의 삼베 구매 및 분배와 관련된 문서 중에는 공동 구매에 참여하여 지분(깃)을 행사한 포전 구성원이 나열된 사례가 있는데, 그 기록의 순서는 牛耕式을 따르고 있었다. 인명의 기재 양식에 대한 파악은 조직의 인적 구성을 비롯한 다각도의 후속 연구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글에서의 실증 분석을 통해 해결된 것이다. 삼베의 상납 및 운반과 관련된 문서의 이해는...
TAG 서울 시전, 市廛, 서울 포전, 布廛, 삼베, 조달, 조선후기, 문서의 식별과 분류, Seoul merchant guild(shijon), hemp merchant guild(pojon), hemp cloth, procurement for government, late Choson Korea, identification and classification of documents
조선후기에 서당 학동들이 읽은 탄원서
전경목 ( Kyoung Mok Chon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257~286페이지(총30페이지)
조선후기의 서당에는 양반의 자제 이외에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도 출입하며 한문을 익히고 유교경전 등을 두루 읽었다. 그러나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들은 현실적으로 과거에 합격해서 관리로 진출하거나 혹은 성리학자로 명성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실용문 즉 토지나 노비 매매문서와 소송장, 축문과 혼서 등을 익히고 오늘날 면장에 해당하는 존위 등을 역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들은 서당에서 탄원서를 비롯한 각종 실용문을 작성하는 법을 익혔다. 그런데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들이 서당에서 읽은 실용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요람』 혹은『수문록』등에 수록되어 있는 탄원서를 살펴보면 실제로 관아에 제출했던 소송장에 비해 표현이 문학적으로 수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공의 인물이나 사건 등이 가미되어 있어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느낄수 있도록 ...
TAG 양반, 중인, 평민, 서당, 소송장, 탄원서, 실용문, 설화, 야담, 소설, the nobility, the middle class, commoners, village school, litigation document, petition, practical text, folktale, unofficial historical story, novel
조선시대 관찰사(觀察使) 교서(敎書)와 유서(諭書)의 문서 행정과 운용
노인환 ( In Hwan Noh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287~313페이지(총27페이지)
조선시대 국왕은 관찰사에게 부임지를 잘 다스리라는 내용의 敎書와 군사권의 운용과 관련된 諭書를 내려주었고, 관찰사는 교서와 유서를 통해 국왕의 명령을 위임 받아 각 道의 행정과 군사를 통치하였다. 이러한 관찰사의 교서는 교서제술관 배정, 교서 제술, 製進單子 작성과 入啓, 국왕 결재, 注書書寫, 施命之寶 安寶의 과정을 거쳐 발급되었다. 유서는 승정원의 주서가 본문의 내용을 작성하고 密符置簿冊을 통해 密符 번호를 기재한 후에 諭書之寶를 안보하여 발급되었다. 관찰사의 교서와 유서는관찰사의 재임 기간에 도의 명칭이 변경되거나 관찰사가 加資된 경우에 재발급 되었으며, 국왕의 大喪이 있는 후에 유서가 재발급 되었다. 교서와 유서를 수취할 때에 관찰사는 국왕에게 辭朝를 거행하고 궁궐에서 수취하였고, 除朝辭赴任의 경우에는 부임한 감영에서 수취하였다. 재임 기간에 ...
TAG 관찰사, 觀察使, 교서, 敎書, 유서, 諭書, 문서 행정, 발급, 수취, 문서 운용, Provincial Governor, Gyoseo, Yuseo, Document Administration, issuance, receipt, Document Implementation
조선시대 왕세자 혼례의 절차와 의미 -1882 왕세자(王世子) 가례(嘉禮)를 중심으로-
이욱 ( Wook Lee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315~336페이지(총22페이지)
본 연구는 1882년에 거행되었던 왕세자 李.(1874-1926, 재위 1907-1910)의 혼례 과정과 그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1874년(고종 11) 2월 8일에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출생한 순종은 이듬해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9세가 되던 1882년 1월 10일에 성균관에 입학하고, 20일에 冠禮를 행한후 2월 21일에 閔台鎬의 딸과 혼례를 치렀다. 본 연구는 왕세자 혼례 절차를 국왕, 왕세자, 王世子嬪의 역할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納采, 納徵, 告期, 冊嬪, 臨軒醮戒 등의 의식을 주관하는 자는 신랑의 婚主이자 국왕인 高宗(1852-1919, 재위 1863-1907)이었다. 그는 궁궐의 正殿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신부의 혼주에게 婚事를 명령하고, 嬪을 책봉하였다. 그리고 왕세자를 보내어 신부를 맞...
TAG 혼례, 왕세자빈, 책빈, 입문의식, 조현례, 묘현례, marriage ceremony, wangseja bin(princess consort), chaekbin(enthronement of consort), initiation rites, Johyeonrye, 朝見禮, Mohyeonrye, 廟見禮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주영하 ( Young Ha Joo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337~371페이지(총35페이지)
본고는 1882년 왕세자 척의 초간택·재간택·관례의 상차림을 적은 왕실음식발기에 대한 연구이다. 필자는 관련 네 점의 왕실음식발기의 서지사항과 음식상을 받은 사람, 그리고 참석자가 받은 음식상의 구성 등에 대해서 분석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간택 때 이미 왕세자 척의 왕세자비가 결정되었을 가능성이다. 재간택의 상차림을 적은 왕실음식발기에 ‘아기씨주물상+처자상육상’과 ‘아기씨진지상+진지육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초간택과 재간택 때 참여한 처자들의 상차림은 진지상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왕을 비롯한 다른 참석자의 상차림은 약식의 잔칫상이었다. 셋째, 조선왕실의 행사에서는 주인공에게 가장 성대한 음식을 차려준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를 통해서 왕실음식발기에 대한 연구방법 몇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는 동일한 행사와 관련된...
TAG 왕세자 척의 1882년 혼례, 왕실음식발기, 왕세자비 간택, 왕실 상차림, 음식의 위계질서, The Crown Lists(Eumshik Bal`gi), Gantaek(the selection process for the crown princess), The Joseon Palace Guisine Menu, The Hierarchical Order of Menu
장서각소장 왕실발기로 보는 순종 가례 복식연구
이민주 ( Min Joo Lee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373~404페이지(총32페이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950여 점의 왕실발기가 소장되어 있다. 그 중에서 1882년에 치러진 왕세자 척(후일 순종)의 가례와 관련된 발기 자료는 75건이 있으며, 혼례와 관련된 발기는 58건이 있다. 왕실발기는 전례서나 의궤, 등록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실제 왕실혼례를 위해 준비한 구체적인 물목을 기록하고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혼례복식과 관련된 22건의 발기 자료를 중심으로 초간택에서 간택 후 별궁으로 갈 때의 복식과 혼례를 위해 준비한 이불, 베개, 비녀, 노리개, 보자기 등의 물목을 통해 순종가례의 복식문화가 갖는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전하는 < 임오 정월 가례시 간택처자 의차 >를 통해 간택처자들의 복식이 하사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조선왕실에서는 간택...
TAG 순종, 왕실발기, 가례문화, 의대, 장서각, King Sunjong, 純宗, Royal Family Balgi, 王室發記, Culture of Wedding, 嘉禮文化, Dress code, 衣대, Imoh, 壬午
15세기 이두 편지 사례 연구 -이번(李蕃)의 가내서간(家內書簡)을 중심으로-
안승준 ( Seung Jun Ahn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6] 제48권 405~435페이지(총31페이지)
2007년 경주 양동마을 여주이씨 회재 李彦迪의 종가에서 이두문 서간이 조사, 발굴되었다. 바로 李蕃(1463∼1500)이 그의 아버지 李壽會(1431~1518)에게 쓴 편지였다. 현존하는 이두 편지로는 1468년(세조 14)에 작성된 金宗直(1431~1492)의 어머니 밀양박씨와 아내 하산조씨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15세기 이두 편지는 한글 창제를 전후한 시기의 언어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李蕃의 서간은 경주 양동마을 여주이씨 종가에 永慕帖이라는 책자에 편집되어 있으며 모두 15건에 달한다. 영모첩은 회재 이언적의 先系 및 직계 후손들의 친필 遺墨을 모아 편집한 책자이다. 이언적의 유묵 대부분은 경주시 안강읍 옥산마을 獨樂堂에 거주했던 李全仁의 후손들이 보관하였다. 영모첩의 註記 사항...
TAG 고문서, 이언적, 이두, 서간, 양동마을, 여주이씨, 영모첩, 永慕帖, 한국식 한문, 선물, 膳物, Paleograph, Lee Eonjeok, Idu, letters, Yangdong village, Lee clan of Yeoju, Yeongmocheop, Koreanized Chinese Sentences, Gift
위진남북조시대(魏晋南北朝時代) 공문서(公文書)의 서(署)名 방식 연구 -지목병용(紙木倂用) 시기(時期)의 서(署),성명(姓名),압(押)을 중심으로-
박준호 ( Jun Ho Park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5] 제47권 1~23페이지(총23페이지)
본 논문은 나무 재질의 문서가 종이 재질의 문서로 변화하던 3세기부터 6세기까지 문서 재질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당시 公文書에 있어서 署名의 형식과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문서 재질이 나무에서 종이로 바뀜으로 해서 信標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나무 문서의 檢이나 封泥는 종이 문서의 署名이나 印章으로 바뀐 것이 그것이다. 署名과 같은 새로운 신표 방식은 기존 稱姓이나 不稱姓으로 표현되는 位階 형식과 결합되어 禮式에 따르는 署名의 형식이 정착되기에 이른다. 秦漢時代 木簡의 署는 엄밀한 의미에서 지금의 署名과 동일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당시 문헌 기록상에 署를 署名으로 풀이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전하는 공문서 자료를 통해서도 일관하는 署名의 개념을 추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 문서에서 종이 문서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署...
TAG 서명, 署名, 화락, 畵諾, , , , , 서사재료, 書寫材料, 지목병용, 紙木倂用, 봉미락, 鳳尾諾, 황태자감국의주, 皇太子監國儀注, 구륵, 句勒, 칭성, 稱姓, 불칭성, 不稱姓, signature, official documents, Seo-myeong, 署名, Seo, , Ap, , Hwa-rak, 畵諾
조선시대 비답(批答)의 문서 유형 연구
노인환 ( In Hwn Noh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2015] 제47권 25~51페이지(총27페이지)
조선시대 批答은 관원이나 中央衙門에서 국왕에게 上達하는 문서 및 내용에 대한 국왕의 答을 의미한다. 관원이 상달한 문서에 대해 국왕이 답하는 비답은 不允批答·批答有旨·批答諭書·疏箚批答 등이 있으며, 중앙아문에서 상달한 문서에 대해 국왕이 답하는 비답은 草記批答·啓辭批答·問安批答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불윤비답·비답유지·비답유서·소차비답의 경우에는 실물 문서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어 비답의 문서 유형을 확인할 수 있다. 不允批答은 의정부의 삼정승이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呈辭를 올려 辭職을 요청한 경우에 국왕이 사직을 윤허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내리는 비답이다. 고려시대 불윤비답의 제도에 영향을 받아 조선 초기부터 시행되었으며, 중종 연간부터 제도가 정착되었다. 불윤비답은 문서 양식과 발급 과정에서 교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국왕이 의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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