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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AND 간행물명 : 인문과학연구320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일반논문> 18세기 초-중반 경상도 방어전략의 변화 - 수군에서 요충방어로의 전환을 중심으로 -
구열회 ( Koo Yeol-hoi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5권 59~96페이지(총38페이지)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재침에 대비하여 경상도지역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이에 17세기의 경상도의 방어전략은 수군을 중시하며 남해안을 주요 전장으로 상정하고 일본과의 전면전을 대비하였다. 이처럼 전면전을 상정한 방어체제는 그에 상응하는 인력과 재정이 필요하였고, 또한 서해의 전라, 충청도의 수군까지 전면동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18세기 초에 황당선(荒唐船)의 증가와 같은 서해로부터의 위협은 남해안을 중심으로 한 전면적 동원체제를 동요시켰고, 사회적 변화로 인한 불만세력 및 도적의 준동은 육지의 치안문제를 부각시켰다. 18세기가 되어 무신란(戊申亂)의 발발은 경상도지역에 대한 조정의 경계를 조성하는 정치적 요인이 되었고, 균역법(均役法)의 시행은 지방의 군영과 수영의 재원을 감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운영에도 영향을...
TAG 수군방어, 무신란, 균역법, 함선기동화, 관방강화, Naval defence, Musin Revolt, Equalized Tax Law, Mobilization of fleet, Reinforcement of fortresses
<일반논문> 식민지 조선의 금지된 이동 - 이동경찰(移動警察) 연구 -
장신 ( Jang Shi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5권 115~143페이지(총29페이지)
이 글에서는 일제시기 철도와 선박 등에서 활동했던 이동경찰의 실태를 밝혔다. 제한된 사료를 활용해서 얻은 결론은 아래와 같다. 첫째 조선에서 이동경찰은 1928년의 쇼와천황의 즉위식을 계기로 실시되었다. 그전까지 여러 차례 논의만 있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둘째 이동경찰의 상설화는 1932년 3월 평안북도경찰부의 이동경찰이 처음이었다. 평북 이동경찰은 처음에 부(市)경찰서 소속이었다가 도(道)경찰부 직속으로 바뀌었다. 셋째 이동경찰이 실시된 도(道)는 육로와 해로로 국경 또는 일본(내지)과 연결되는 곳이었다. 넷째 초기 이동경찰의 목적은 사상범의 예방과 검거였으나 1930년대 들어서 금(金)밀수 단속으로 바뀌었다.
TAG 사상범, 금밀수, 철도, 기차, 소화대례, 조선박람회, a thought offense, smuggling of gold, rail road, train, the enthronement of Emperor Showa, Joseon Exposition
<서평> ‘사이비역사학’을 대하는 ‘위험한 아이들’의 자세 (젊은 역사학자 모임,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2017년)
김재원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5권 145~150페이지(총6페이지)
이 글에서는 일제시기 철도와 선박 등에서 활동했던 이동경찰의 실태를 밝혔다. 제한된 사료를 활용해서 얻은 결론은 아래와 같다. 첫째 조선에서 이동경찰은 1928년의 쇼와천황의 즉위식을 계기로 실시되었다. 그전까지 여러 차례 논의만 있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둘째 이동경찰의 상설화는 1932년 3월 평안북도경찰부의 이동경찰이 처음이었다. 평북 이동경찰은 처음에 부(市)경찰서 소속이었다가 도(道)경찰부 직속으로 바뀌었다. 셋째 이동경찰이 실시된 도(道)는 육로와 해로로 국경 또는 일본(내지)과 연결되는 곳이었다. 넷째 초기 이동경찰의 목적은 사상범의 예방과 검거였으나 1930년대 들어서 금(金)밀수 단속으로 바뀌었다.
<기획논문 -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초기 독립운동과 민주공화주의의 태동
김정인 ( Kim Jeongi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31~52페이지(총22페이지)
조선말기ㆍ대한제국기에서 민주와 공화, 민주공화는 주로 정체의 형태로 주목받던 개념들이었다. 국망을 눈앞에 둔 현실에서 이것들이 서서히 주의이자 신념으로 자리 잡아갔다. 나라를 잃고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과 나라 잃은 인민은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꿈꿨다. 그러한 노력의 소중한 성과가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민주공화제의 탄생이었다. 본고에서는 조선말기와 대한제국기에 걸쳐 민주와 공화, 민주공화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공화정을 향한 꿈을 키우던 과정과 국망 이후 전개된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신국가 건설의 이념적 기치로 민주공화주의를 채택하는 양상을 살피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초기 독립운동의 산물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민주공화제의 탄생의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TAG 민주정, 공화정, 민주공화주의, 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Democracy, Republican state, Democratic Repbulicanism, Liberation movement,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Daehan Min`guk”)
<기획논문 -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념적 지향 - 대한민국임시헌장(1919) 해석을 중심으로 -
이준식 ( Lee Junsik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53~82페이지(총30페이지)
현재 한국 사회는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 글은 과거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이해하려는 것이다. 3ㆍ1혁명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중이 더 이상 지배받는 계급이 아니라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중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와 정부를 요구했고 그러한 요구에 따라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출범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국의 전체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공화제 국가를 표방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3ㆍ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상징되는 독립운동은 그 자체가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 것이었다. 현행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기되어 ...
TAG 3ㆍ1혁명,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임시헌장, 민주공화제, 평등, Samil(March 1) Revolution, Provisional Republic of Korean Government, Korean Provisional Charter(1919), democratic republic, equality
<일반논문> 포은 정몽주와 용인 충렬서원의 역사적 의의 고찰
박성희 ( Park Seong-hee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113~133페이지(총21페이지)
본고는 서원의 정치사회학적 또는 건축학적 관점이나 문화적 활용에 중점을 둔 기존연구에서 벗어나 배향 인물과 서원 및 해당 지역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역사적 측면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에 유학의 조예가 깊고 붕당의 한계를 넘어서 존앙 받고 있는 포은 정몽주를 연구대상 인물로 설정하고, 전국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배향 서원들을 조사하였다. 총 18개의 서원 중 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위치한 충렬서원의 건립 배경 및 변천 과정, 의의에 대해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정몽주 묘역과 충렬서원이 자리 잡은 용인 모현면 지역이 포은의 가문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유교의 충과 효 등 보편적 가치와 전통문화 계승 및 지방사 연구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다.
TAG 충렬서원(忠烈書院),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용인(龍仁), 유교문화(儒敎文化), Chungnyeol Seowon, Jeong Mong-ju, Yongin, Confucian culture
<일반논문> 조선전기 기병과 화포의 편성원칙 - 기병(奇兵)과 정병(正兵) 체계의 성립 -
곽성훈 ( Gwak Seonghu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135~160페이지(총26페이지)
조선 전기 군사편제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무기는 총통과 기병이었다. 과거의 군사편제에서 핵심이 되는 병종은 기병과 전차였으나, 화약무기가 개발된 이후 새로운 무기를 기존의 군사편제에 수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조선 전기 군사편제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기병의 감소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무기의 개발, 국경 지역의 침입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다. 고대 동아시아의 군사이론은 奇兵과 正兵의 조화로운 운용을 강조했다. 조선의 군사이론은 고대의 이론을 수용하여 기병은 奇兵으로의 역할을 수행했고, 화약무기는 정병으로의 역할을 부여했다. 조선 전기의 군사이론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존의 이론을 발전시키며 변화했다.
TAG 奇兵, 정병(正兵), 화약무기, 기병, 군사이론, 오위진법, extraordinary tactics, standard tactics, gunpowder weapon, cavalry, military theory, OwiJinbeop(五衛陣法)
<기획논문 -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제헌헌법의 평등이념
한상권 ( Han Sang-kwo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83~111페이지(총29페이지)
대한민국의 정신적 토대는 독립운동세력이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공화주의와 평등주의 이념이다. 1948년 대한민국은 새롭게 출범하면서 형식적ㆍ정치적 민주주의가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실질적ㆍ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ㆍ경제적 민주주의를 표방하였다.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한 결과였다. 제헌헌법은 국민 기본권의 내용을 자유권에서 사회ㆍ경제권으로 확대 심화하여 민주주의가 실체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헌헌법은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면서도 국민의 삶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주는 복지국가를 추구했다. 경제 질서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수립’을 2대 기본 원칙으로 삼았으며, 경제를 개인과 기업에만 맡겨둠으로써 발생하는 소득불균형, 경제력 남용...
TAG 제헌헌법,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공화주의, 평등주의, 삼균주의, 건국강령, 자유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 The First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Liberal Democracy, Social Democracy, Republicanism, Egalitarianism, Principle of Three Equalities, Doctrine of Foundation, Free market econom
<기획논문 -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총론: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이만열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9~29페이지(총21페이지)
한국근현대사는 한말 개항 이후 국내외로부터 부닥친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형태의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일제 강점기를 맞게 되었고 이에 저항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는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국토는 분단되었고 민족상잔까지 겹쳤지만 그런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갔다. 근현대시기에 이룩된 이런 역사적 사건들은 인과관계를 형성하면서 오늘의 한국을 형성해 왔다. 오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갖는 이 학술 심포지움은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념관이 위치한 이 강북구 수유리의 산자락에는 과거 독립운동에 관여했던 독립유공자들의 묘역이 16기나 있는데 한말 헤이그 특사로서 현지에서...
<일반논문> 1909년 국민대연설회 전후 대한협회의 행보
남기현 ( Nam Kihyu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17] 제24권 161~184페이지(총24페이지)
이 글의 목적은 대한협회가 일진회와의 연합이 좌절되면서 취한 대응과 그 후 어떤 행보를 거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대한협회는 당시 ‘국민의 정당’을 자처했던 유력한 정치세력이었다. 하지만 친일 단체였던 일진회와 연합을 시도하면서 그 정체성에 타격을 받았다. 이후 일진회가 발표한 ‘한일합방청원서’를 반대하기 위해 이완용 측이 주도한 국민대연설회에 참여했다. 아울러 독자적으로 ‘국민대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한협회에서는 일진회, 이완용과 국민대연설회 등에 대한 명확한 정책을 세우지 못했다. 국민대연설회 이후 대한협회는 친일 정치세력의 포섭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일진회나 친일내각에 반대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던 대한협회는 그 정체성을 상실해 갔으며, 결국 지회 차원에서 나온 한일합방 반대 의견을 수용할 수 없었다.
TAG 대한협회, 국민대연설회, 국민대회, 이완용, 일진회, 오가키 다케오, Daehanhyubhoe(大韓協會), Gukmindaeyeonseolhoe(國民大演設會), Gukmindaehoe(國民大會), Lee, Wanyong(李完用), Iljinhoe(一進會), Ohgaki Takeo (大垣丈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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