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홍 ( Kyu Hong Yeon )한국장로교신학회, 장로교회와 신학[2012] 제9권 122~143페이지(총22페이지)
한국 장로교회는 초창기 선교부터 활발한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장로교 전통을 공유하는 한국 장로교회는 다른 교파에서 선교사들과 합동하여 성서번역, 기독교 문서 출판, 기독교 교육관 운영 등 연합운동을 통해 사회 봉사에 앞장섰다. 이와 같은 사회 봉사 전통은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이후 농촌 재건과 복지 선교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 장로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미시사적 연구로서 1949년에 설립된 한국 기독교 연합 봉사회(Union Christian Service Center)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첫째, 기독교 연합 봉사회는 해방 이후 최초의 에큐메니컬한 사회 봉사 기관이라는 것과 둘째, 시대적 과제인 농촌 재건과 발전에 주력했다는 것과 셋째, 한국 교회 초기의 사회 복지적 봉사의 영역을 발전적으로 ...
이은선 ( Eun Seon Lee )한국장로교신학회, 장로교회와 신학[2012] 제9권 144~178페이지(총35페이지)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을 수용하면서 한국의 문명화와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문명화와 관련하여 선교사들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문명개 화론을 전파하였고, 장로교회는 그러한 문명개화론에 따라 교육과 의료를 통하여 서구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가운데 한국장로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타파한 인간평등의식, 근로의식, 민주의식 등을 형성하였고 그러한 근대의식을 토대로 근대사회와 근대문화 형성에 기여하였다. 신분제를 넘어서 모든 국민이 한 민족이라는 근대적 민족 개념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장로교회를 중심한 기독교의 한글성경 사용을 통한 한글보급이었다. 그리고 장로교회는 삼문출판사를 중심한 근대적인 출판사를 설립하여 다양한 출판물들을 출판하여 출판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교회와 학교를 중심...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을 수용하면서 한국의 문명화와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문명화와 관련하여 선교사들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문명개 화론을 전파하였고, 장로교회는 그러한 문명개화론에 따라 교육과 의료를 통하여 서구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가운데 한국장로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타파한 인간평등의식, 근로의식, 민주의식 등을 형성하였고 그러한 근대의식을 토대로 근대사회와 근대문화 형성에 기여하였다. 신분제를 넘어서 모든 국민이 한 민족이라는 근대적 민족 개념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장로교회를 중심한 기독교의 한글성경 사용을 통한 한글보급이었다. 그리고 장로교회는 삼문출판사를 중심한 근대적인 출판사를 설립하여 다양한 출판물들을 출판하여 출판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교회와 학교를 중심...
장동민 ( Dong Min Jang )한국장로교신학회, 장로교회와 신학[2012] 제9권 203~230페이지(총28페이지)
본 논문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장로교회가 한국의 역사에, 내용적으로 말하자면, 한국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선교사가전하여준 복음을 받은 한국 기독교는, 복음과 더불어 근대정신을 공유하게 되었다. 미국 개신교가 가진 근면과 금욕의 덕이 자연스럽게 한국 기독교에도 정착되어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근대 과학을 가능하게 한 세계관이 미신적인 세계관을 대치하였다. 봉건적 신분제도를 타파하는 데도 기독교는 큰 공헌을 하였고, 민족주의가 정착되도록 하였다. 기독교=근대화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점 가운데 하나가 한국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둘째는 정말 한국 기독교(장로교)가 한국...
한국 장로교회는 한국 최고 최대의 교파로서 한국 교육에 끼친 영향도 가장 크다. 한국 장로교회의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는 한글을 통하여 성경의 번역과 기타 사용으로 한글을 살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 시켰다. 그는 서구식초중등학교를 세우고 발전시켜 마침내 대학 까지 세워 한국근대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교육 철학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수학케 하였다. 특히 그가 처음 설립한 경신학교는 흔히 알려진 대로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보다 먼저 설립되었다. 언더우드가 처음학교를 세웠을 때 학생 모집이 힘들어 고아들을 모아 교육을 실시하는데서 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대학교육 까지 하였다. 한국장로교회는 서구식 근대학교 소개와 정착에 앞장섰다. 또 서구식 근대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많은 중고등학교를 건립하여 한국교육의 ...
한국 장로교회는 한국 최고 최대의 교파로서 한국 교육에 끼친 영향도 가장 크다. 한국 장로교회의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는 한글을 통하여 성경의 번역과 기타 사용으로 한글을 살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 시켰다. 그는 서구식초중등학교를 세우고 발전시켜 마침내 대학 까지 세워 한국근대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교육 철학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수학케 하였다. 특히 그가 처음 설립한 경신학교는 흔히 알려진 대로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보다 먼저 설립되었다. 언더우드가 처음학교를 세웠을 때 학생 모집이 힘들어 고아들을 모아 교육을 실시하는데서 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대학교육 까지 하였다. 한국장로교회는 서구식 근대학교 소개와 정착에 앞장섰다. 또 서구식 근대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많은 중고등학교를 건립하여 한국교육의 ...
이 글은 1950년대에 일어났던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1952, 1953, 1959)의 성격에 대한 연구이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분열을 선택하였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단의 ``외적 원인``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나타난 ``내적 원인``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미국 장로교회의 역사에 이미 이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1) 외적 원인: 교단 정치 상황 속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건들을 가리킨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평신도의 목사 추천령,`` 미국 교회의 ``부흥 운동과 노예제도,``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 문제``(1952), ``조선신학교``(1953), 그리고 ``WCC``(1959)가 여기에 속한다. 2) 내적 원인: 교단 내의 보수와 진보...
120여 년 전에 시작된 3개국 4개 교단의 내한(來韓) 선교회가 단일(單一) ``대한예수교장로회``를 설립했다. 이것이 결실을 맺어서 ``독(립)노회``가 성립되었고(1907년) 또 이 자리에서 토착 목회자 7명이 목사로 안수 받아 장립했다.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정신은 대략 193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교단 안에서 일어난 신학 논쟁, 그리고 총회의 신사참배 강요 굴복이 교단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1945년 8·15광복 직후부터 장로교회는 분쟁에 휩싸였다. 1950년대에 장로교회는 세 차례 분열을 거듭했고, 그 결과 4개 교단이 생성되었다. 그 이후로 분열된 장로교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과 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이상규 ( Sang Gyoo Lee )한국장로교신학회, 장로교회와 신학[2011] 제8권 83~112페이지(총30페이지)
이 논문은 해방 후의 상황에서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고신교회가 형성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 글이다. 해방 후 김길창을 비롯한 친일 전력의 교권주의자들의 사조 경남노회 조직이 경남노회 그리고 한국 장로교회 분열의 시작이었고, 당시 (남부)총회가 경남노회 문제를 정당하게 취급하지 않는 결과로 정통성을 지닌 경남법통노회가 총회로부터 축출된 것이 고신교단 형성의 배경이 된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논증하였다.
연규홍 ( Kyu Hong Yeon )한국장로교신학회, 장로교회와 신학[2011] 제8권 113~148페이지(총36페이지)
1953년 4월 25일 대구서문교회에서 열린 장로회 제38회 총회는 김재준 목사의 파직을 경기노회에 지시하였다. 이에 부당함을 주장하며 조선신학교 측은 1953년 6월 10일에 서울 동자동 한국신학대학 강당에서 호헌 38회 총회를 소집하였다. 그리하여 ``새 역사``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새 역사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와의 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원점을 찾아 살아 있는 과거를 재확인하고 그 본질을 계승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장의 역사는 결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 초기의 성서적이고 민족적이며 개혁교회적인 장로교 전통을 올바로 계승하기 위해 살아 있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배움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기장의 새 역사는 무엇을 계승하는가? 첫째, 기장의 역사는 초기 한국 교회의 성서적이고 민족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