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 전반에 걸쳐서 뿐만 아니라 <<논어>>나 <<노자>> <<장자>> 등 유가서와 도가서에도 상당히 밝았음이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인용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려 대각국사가 남긴 시에 의하면 원효는 의상과 함께, 고구려 고승으로서 백제 땅인 전주 고대산으로 옮겨 간 보덕화상의 강하에서 <<열반경>>
부르게 됨으로서 불교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만일 인물로서 두 시기를 구별하는 표식을 삼는다면 자장은 통일 전 불교의 집대성자요 원효는 통일 후 불교 개척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고구려 불교사상의 주류는 반야공사상의 천명에 주력한 삼론종계통이었는데, 고구려 요동출
,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승기신론소 정종분은 진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하며, 깨달음을 향한 실천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혼란 속에서 깨달음을 찾고,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지혜이다.
1,100개가 넘는 상세한 각주를 제시함으로서 누구나 쉽게 대승의 정수와 원효의 사상을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이 장에서는 동서양고전의이해2공통) 교재(2021)에서 동양의고전 다룬장을 하나골라-제1장 원효 『대승기신론 소·별기』-서 지은이소개부터 본문 및 원문내용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기로 하자.
과정이 아니라 갑자기 일어나는 하나의 정신적 혁명과도 같다.
지눌은 돈오의 두 종류, 두 차원을 구분하였다. 지눌에 의하면 깨달음에는 해오와 증오 가 있다. 전자는 수행 이전에 얻는 깨달음이며 후자는 수행 후에 얻는 깨달음이다. 따라 서 지눌이 돈오를 선의 시작으로 제시할 때 그것은
않는 행동으로 보였다. 그래서 왕실에서 베푸는 각종 불교 행사에는 참가하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하였으나, 원효의 마음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결국 난해한 책으로 알려진 금강삼매경에 대한 疏를 짓고, 그 강의를 위해서 다시 중앙의 불교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불교사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하고자 했던 이유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장 삼장을 흠모하여 당시 유행하던 신유식학의 습득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마음먹기 이전에 이미 유식학을 접했으나 신라 사회에 이미 퍼져 있던 기존의 구유식학 체계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원효는 130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우리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고승으로 추앙 받으며 한국 불교사상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원효, 그는 존경받던 고승이면서 환속한 거사였고, 예언자이기도 하였으며, 뛰어난 사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