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예수의 모든 활동은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그의 활동의 유일한 의미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소집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그의 소명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그의 소명 안에 ‘삶의
Ⅰ. 서론
메시아의 길을 자각하게 된 예수님은 외로운 사정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임을 홀로 안타까워했다. 메시아는 참부모이며 그 사명을 위해서는 실체 신부를 맞이하셔야 한다. 천사장이 아담과 남매와 같이 자라던 해와를 거짓사랑으로 타락시킨 것을 근본적으로 복귀해
성경과 꾸란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한 해석과 의미의 수용은 여러 가지 충돌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신관과 이슬람교의 유일신관 -Tauhid- 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논란의 소지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신의 대한 용어를 보면 개역 성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은 없으나 성경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창세기의 엘로힘은 복수명사로 `Gods`이다. 신약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성부 하나님도 신이심을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도 신이심을 고백하였으며 성령 또한 신임을 이야기 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삼위 중 각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특성, 절대적 타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자신을 알게 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시는 바로 그 순간, 이 신비 속에 자신을 가리운다.
기독교 믿음의 대상에 대한 핵심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안에서 사람이 되시고자 하셨던 영원 그 자체이신 하
Ⅰ. 서론
‘하느님은 세상의 영혼이지만, 세상은 그 여러 부분 안에 그 본성이 신적인 많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바로의 견해에 관하여’생각해보자. 바로는 하느님이 세상의 영혼이며, 이 세상 자체가 하느님이라는 범신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분인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
Ⅰ. 서론
인간은 자기가 진실한 것으로서 표상하는 것을 곧바로 현실적인 것으로서 표상 한다. 인간에게는 현실적인 것만이 진실한 것이며 상상된 것과는 대립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개념, 즉 실존의 개념은 진리의 첫째가는 개념이며 근원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신이란 인간의 본질이 최고의 진리로
기독교 윤리는 쉽게 타협접적 해결로 빠지며, 단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만 근거를 두고 수립된 윤리는 극단주의나 열광주의(Schwärmerei)로 빠진다. 오직 이 세 개의 통일에서 대립이 해소된다. 예수 그리스도, 인간 그 자체(der Menschen)는 하나님이 피조 세계의 현실 가운데 들어온 것을 뜻하며, 우리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그러한 메시야 예언이 성취되신 것으로 본다(Jesus, regarded as the realization of the Messianic prophecy).예수가 메시야의 사적인 명칭이라면 그리스도는 공적 명칭에 해당된다. 구약 성경의 마쉬아흐(기름을 붓다는 말인 마사흐에서 파생)와 동격어이며 따라서 기름 부음 받은 자란 의미를
성자는 권위에 있어서 성부로부터 왔다. 성령은 본질과 관계와 협동 및 권위에 있어서 성부로부터 왔고 성자로부터 나왔다. 그러므로 삼위 일체 안의 위는 다른 위들과 분리되어서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