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 당서唐書에 기재된 고려 관련 자료 정리
고려는 부여에 기인한 나라로 평양성을 도읍으로 삼았는데, 위치는 한나라 낙랑군의 옛 땅으로 장안의 동쪽 5천 1백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영역은 동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은 요수遼氺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며, 남으로 바다
1. 머리말
임나일본부설이란, 왜가 4세기 중엽에 가야지역을 군사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가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였다는 학설을 말한다. 쓰에마쓰(末松保和)에 의해 집대성된 이 주장은, 이후 이노우에(井上秀雄)와 기토(鬼頭靑明), 야마오(山尾辛久) 등에 의해,
舊唐書 券一白九十九 上
列傳 第一百九十九 上
東夷
高麗 百濟 新羅
<高麗>
- 당서唐書에 기재된 고려 관련 자료 정리
고려는 부여에 기인한 나라로 평양성을 도읍으로 삼았는데, 위치는 한나라 낙랑군의 옛 땅으로 장안의 동쪽 5천 1백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영역은 동으로 바다를 건너 신
高 [句] 麗
고구려(高句麗)는 그 선조가 부여(夫餘)에서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朱蒙)인데, 하백(河伯)의 딸이 햇빛에 감응되어 잉태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장성하여 재주와 지략이 있자,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버렸다. 이에 주몽은 紇斗骨城(흘두골성) 위서(魏書)와 북
우선 본문의 내용을 보기에 앞서 『宋書』 그리고 『宋書』의 「夷蠻列傳(이만열전)」그리고 高句驪國傳, 百濟國傳의 특징을 설명해야 하겠다.
『宋書』는 南朝 薺의 武帝) 永明 5~6년간에 씌여진 60년간의 正史로 帝紀 10, 志 30 列傳 60 總 100券 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육조의 정사는 거의가
들어가며
양명학은 왕양명(1472~1528년)에 의해 성립되어 주자학과 더불어 중국 유학(儒學)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고, 동아시아의 유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양명학이 성공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양명학의 성립은 주자학에 대한 비판에서
1. 신화 내용
옛날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의 일이었다. 여섯 촌의 우두머리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둑 위에 모여 의논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위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법도를 모르고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큰일
인간이 그 존재를 온통 자연의 힘에 노출시키고 그에 의존하고 순응하며 살았을 때, 인간은 자연의 힘을 찬양하고 또 그 힘을 무서워하였다. 그래서 인간이 좀더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힘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만 하였다. 그 결과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힘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것을 인간과
호남 문화의 특성에 대해서 언급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연 호남이라는 지역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합쳐서 부르는 말', '金堤 碧骨堤의 남쪽을 호남 지방, 서쪽을 호서 지방이라 부른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忠淸北道 堤川의 義林池를 일종의 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