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박정희 정권의 문화사업
1) 박정희의 세종대왕 숭배
박정희가 이순신 다음으로 숭배한 역사적 인물은 세종대왕이었다. 그가 세종대왕 숭배와 관련해서 벌인 사업은 다음과 같다.
․1970년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
․1975년에 건립한 민족문화의 전당을 세종문화회관으로 명명
․어린
교육정책들을 소주제로 하여 토론한 내용을 전개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국민교육헌장’을 필두로 하여 그 내용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시화 되어 실시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시작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국민교육헌장의 선포, 국사교육의 강화, 새마을 교육, 반공․군사교육, 충효교육, 고교
Ⅰ. 서론
인성교육이란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방법으로써 올바르게 생각하고 그 내면을 통해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성격과 인격을 길러주기 위해 이루어지는 바른 심성 지도가 바로 인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태권도 지도자들이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것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회복시키고 사회를 살기 좋은 것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일들이 단순한 사랑이나 감정의 교육이나 인성의 교육이나 미적 감각의 교육이나 충효의 교육만 가지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교육면에서, 즉 국민의 도덕적 교화와 문화 창달과 같은 면에서 그 교육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유교는 정치를 담당할 인재를 교육하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도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유교는 사상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 것은 아니었으나 충효의 기본 사상과 오경을 중심으로
충효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의 논리는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의 확립에 중요한 논리로 작용했다. 그래서 충효사상을 관리들에게 확산시키고 그를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하고자 했다.
2. 태학 [太學]
372년 고구려에서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귀족의 자제를 대상으로 교육하였다. 고구려에서는 372년(소수림
충효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의 논리는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의 확립에 중요한 논리로 작용했다. 그래서 충효사상을 관리들에게 확산시키고 그를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하고자 했다.
1) 태학(최초의 관학인 고등교육기관, 고급관리 양성, 중국의 영향)
2) 경당(초등교육에서 대학 정도, 최초의 사학, 일반
교육이냐를 놓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7차교육과정에서의 이를 한국인의 정체성으로서 파악하고 덕목화하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를 실천적 측면에서 다루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 시킬 수 있다. 우선 충효중심의 한국적인 덕목체계가 민주적 공동체개념과 상충할 수 있다. 나아가서 한국
충효사상, 예절중시가 서로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계약의 원리에 흡수되어 재력의 힘으로써만 개인의 위상을 평가받는 획일화된 사회로 바뀌었다.
학교교육을 볼 때도 초등학교의 우등교육, 중등학교의 입시교육, 대학의 기술교육 및 출세교육, 그리고 교양 부재 교육으로 젊은이들을 경제적 동물
충효교육과 경로효친사상을 실천한 것이 노인교육이 등장하게 된 동기이다. 그가 노인교육을 하게 된 동기를 3가지로 요약하여 보면,
첫째, 부모가 그리워서 경로당(노인정)을 찾았다
그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서모 밑에서 자랐다. 특히 그는 어머니의 사진이 없어 어머니의 모습을 모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