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이광수라는 작가가 '민족개조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으며 그 논문의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기민족을 비하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논지자체가 편견과 오류가 난무함에 대해 애석함과 통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긴급히 해결하여야 할 근본문제”로 위치지우고 있다. 서춘은 “민종개선학의 지식을 응용하야 이상에 가까운 신체와 이상하는 바에 가까운 정신을 가진 남녀를 선택하여 생산케 하고, 그 정신을 건전케하여 사고판단력을 계발하며 그 신체를 강장케 하는 것”이 인종개선학이
개조론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그 속에 새로운 희망이 있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개조론의 수용을 통해 민족 운동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식인들은 믿었고 조선도 정신적·물질적으로 개조되어야 한다고 지식인들은 주장하였다. 이렇게 볼 때 1920년대 민족운동은 신문화건설과 실력양성, 그리고 정신개조
민족문제테제’에 기초하여 나온 외국에 거주하는 자는 주재국의 노동자·농민 해방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국제주의 관철요구- 을 내세우자 해외 주재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 해외본부-만주총국, 일본총국등-를 해체하고 해당국가의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중국의 경우 만주 총국이 해체
민족성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이해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의 개념과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민족 고유의 상대성과 주체성을 올바로 세워나가는 것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근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일제하 문화운동에
민족주의자를 재평가하여 민족주의자로 포장된 친일파를 찾아내고자 하는 시민운동과 학계의 연구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민족대표 33인의 미니어처가 하나둘씩 제거되고 있는 등, 시민운동의 결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운동은 우리나라의 역사
민족의식을 주창하였던 그의 이름은 그 빛나는 집필활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리 속에 ‘친일’이라는 두 글자와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친일의 그림자는 그의 작품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앞서 말했듯이 이광수에 대한 평가도 극단을 치닫는 경향이 다분한데 작품에 대한 평론을 하는 연구자들은 주
민족개조론”을 익명으로 기고하였다. 이 “민족개조론”은 그가 민족이란 개념을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파악하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우선 ‘민족은 운명이다’라고 전제하는 운명론적 관점에서 민족을 의식했으며, 민족의 본질적 요소로서 혈통과 성격기조, 즉 민족성, 그리고 언어와 문
민족 문학 장르가 됨
민족주의와 계몽주의
이광수 는 애국 계몽 운동을 주장하였으나
그 내용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는 성리학적 전통과 한문학을 부정하고,
한글을 통한 민족문학을 주장하였다.
내선일체’와 <민족개조론>
이광수 는 중 · 일 전쟁 이후 <민족개조론>을 통해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