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들어가며
조선 초 세종대의 4군 6진 개척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명, 여진과의 관계와 조선 내에서의 여러 상황들이 겹쳐 이루어진 성과인 것이다. 본고에서는 여말선초의 대여진 정책과 명과 여진의 정세를 먼저 서술한 후, 그에 따라 이루어진 세종의 4군 6진 개척의 과정
徙民律에 적용할 수 없음을 지적하여 사민율을 적용하지 않고 지차율을 적용할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족의 법제적인 범위 향촌에서 사족을 변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관직의 보유와 과거 합격여부였는데, 국가에서 파악하는 사족이란 본인이 과거에 합격하고 관직을 소지하였는가의 여부,
徙民 정책으로 귀족들은 대부분 새로운 수도 開京으로 이주하였고, 그들이 살던 집은 頹落하였다. 거기에다 왕경내의 巨刹들과 지상에 남아 있던 건조물도 전란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옛 왕경 지역은 농지로 바뀌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지역이 바로 경주의 서남부일대의 역사경관을 형성하
徙民政策
1) 비수전의 대패 - 종족주의의 부활과 북위의 등장
비수전의 대패로 전진 부견이 지향했던 초종족적 보편원리의 실현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호국가의 종족주의적 권력의 구성원리는 일시적으로 그들의 강점으로 작용될 수 도 있지만 여러 종족이 혼재하는 당시의 상황하에서
却說叛酋滿四, 正在窮蹙, 見楊虎狸被擒復歸, ?問他脫逃情由。
각설반추만사 정재궁촉 견양호리피금부귀 극문타탈도정유
각설하고 반란한 추장인 만사는 바로 끝까지 추격당해 양호리가 사로잡혀 다시 돌아옴을 보고 빨리 그에게 도망한 이유를 물었다.
虎狸隨口胡?, ?說官軍輜重, 盡在東山停頓, 不
연산군 시대(1476~1506)
공길과 공결.
공결-연산5년
연산 5년 12월 30일자 실록에 공
결과의 만남이 나타나 있다. 인양
전에서 행해진 나례(의식의 한 형
식)에서 우인(광대) ‘공결’이란 자
가 공길처럼 ‘유식한 문자’(?)를 쓰
다가 왕의 노여움으로 곤장 60대
를 맞는다.
이때 승지 등이 ‘공결은 배우로서
却說李廣因失道誤期, 憤急自?, 軍士不及?救, 相率擧哀。
각설이광인실도오기 분급자경 군사불급창구 상솔거애
相率 [xi?ngshu?i] ① 잇따르다 ② 연잇다
각설하고 이광은 길을 잃어 시기를 잘못해 분노가 급해 스스로 목을 베어 군사는 구제하지 못해 연이어서 애도를 거행했다.
就是遠近居民, 聞廣自
却說司馬相如, 因病家居, 只爲了長門宮中, 贈金買賦, 不得已力疾成文, 交與來使帶回。
각설사마상여 인병가거 지위료장문궁중 증금매부 부득이력질성문 교여래사대회
力疾 [l?j?] ① 병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하다 ② 매우 빠르다
交? [ji?oy?] 교부(交付)하다
각설하고 사마상여는 질병을 집에 살아
至入朝事君, 在大庭廣衆中, 似不能言, 如必須詳奏事件, 往往請?左右, 直言無隱。
지입조사군 재대정광중중 사불능언 여필수상주사건 왕왕청병좌우 직언무은
석건은 조정에 이르러서 군주를 모실 때 대정이 넓고 무리가 있는 곳에서는 말을 못하는 듯하고 반드시 자세히 상주할 사건은 왕왕 좌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