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說
1. 들어가며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chiller)의 처녀작인 《군도(群盜) Die Räber》는 독일 문학사에서 소위 ‘질풍노도의시기’라고 불리던 때의 가장 주요한 작품으로, 한 인간이 사회적인 모순에 부딪히면서 겪는 내적인 갈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군도(群盜)의 존재나 그들의 저항활동에 담긴 사회사적 함의는 사장되고, 작품의 의미폭 또한 현저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활빈당 군도들은 단지 길동의 영웅적 활약을 보조하는 몰주체적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의 저항활동은 길동의 초월적 힘과 지혜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군도(群盜)로 변하였다. 따라서 중앙의 통치력이 약한 지방에서 이 군도를 조직화한 대규모의 농민폭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의 말기의 당은 정치적 하강의 시대였던 만큼 그러한 시대적 위기로 말미암아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고원(高遠)한 철학체계보
군도(群盜)’ 수천 명을 거느리고 무인도에 가서 이러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모습을 통해, 그는 가혹한 봉건적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 안정된 생활을 하고자 열망하는 농민들의 이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봉건적인 신분 제도와 양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선비는 아래로는
<고전시가교육론>
우적가
- 작품의 시대상과 ‘영재’‘군도’에 대한 이해 -
Ⅰ. 서론
『삼국유사』 권5의 ‘永才遇賊’條에는 신라 元聖王代(785-98)에 승려 永才가 만년에 ‘南岳’에 은거하러 가는 도중 ‘大峴嶺’에서 도적 60여 명을 만났을 때, 도적들의 요구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却說叛酋滿四, 正在窮蹙, 見楊虎狸被擒復歸, ?問他脫逃情由。
각설반추만사 정재궁촉 견양호리피금부귀 극문타탈도정유
각설하고 반란한 추장인 만사는 바로 끝까지 추격당해 양호리가 사로잡혀 다시 돌아옴을 보고 빨리 그에게 도망한 이유를 물었다.
虎狸隨口胡?, ?說官軍輜重, 盡在東山停頓, 不
却說呂布擲弓地上, 笑顧紀靈, 劉備道:“這是天意令汝罷兵?!”
각설여포척궁지상 소고기령 유비도 저시천의령여파병니
각설하고 여포는 활을 지상에 던지며 웃으면서 기령과 유비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는 하늘 뜻이 당신들이 전쟁을 마치게 함입니다!”
備卽起座獻觴, 向布道謝;
비즉기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