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배경
우리 나라의 지리서로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수록된 것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소략한 내용의 역사 지지로서 주로 주. 군. 현의 소속 관계와 변천 관계를 기록한데 불과한 것이다. 당대의 전국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지지」 편찬을 시도하기는 세종 때로부터였
신증동국여지승람, 택리지와 여지도서의 소개와 함께 낙동강 문화권의 전반적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뒤에 낙동강 지리를 자세히 살펴보고 지리지를 통해 본 낙동강 문화권 총론과 낙동강 문화권 지리지의 현대적 의의를 마지막으로 결론을 맺을 생각이다
지리지란 일반 지리적 내용과 일정 지역
동국통감』에서도 보인 것이지만, 『동국사략』에서는 그 농도가 한층 진하게 나타난다.
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동국사략』과 유사한 지리비정이 보이고 있어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를 한반도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16세기에 거의 일반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Ⅰ. 일본측 사료에 의한 일본의 주장
1. 도해면허(渡海免許, 1618 / 1661)
도꾸가와막부는 1618년에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개 가문에 죽도에서 전복과 강치를 잡고 박달나무와 대나무 등의 삼림을 벌채할 수 있도록 도해면허를 발부하였으며, 1661년 송도(독도)에 대한 도해면허까지 발부하였다. 이러한
【들어가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독도의 연대를 간단하게 살펴본 후, 붉어지는 독도문제에 대한 양측의 주장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후 일본의 전반적인 독도정책과 그 정책이 가진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전술적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민족사에서의 상징성 높은 이 섬은 행정구역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산 63번지이며 경위도상 위치는 동경 131도 52분 북위 37도 14분 울릉도에서 동남쪽 92㎞로 동도와 서도 등 2개의 섬과 32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여의도 광장의 절반정도인
2. 비운의 비, 폐비윤씨
성종은 왕위에 오른 초기인 5년에 평생의 배필로 맞이한 왕비 공혜왕후를 잃은 이후로 5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이는 숙의 윤씨, 소용 정씨, 소용 엄씨 등이다. 5명의 후궁은 서로 중전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움과 질시, 반목을 하게 되는데 이 당시 대왕대비와 어머니인 인수
5> 음운, 어휘, 문법 관련 자료
<훈민정음 언해본 (訓民正音 諺解本)>
1. 원문
2. 개관
<훈민정음 언해본>은 <세종 어제 훈민정음 (世宗 御製 訓民正音)>이라고도 하는데, <월인석보>(희방사본)의 첫째 권의 책 머리에 실린 것이다. 한문본인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에 나타난 예의(例義)만을 국
살았던 조선의 학자로서, 흔히 실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3~4줄로서 짧게 요약될 수 있을 만큼 한백겸의 학문적 체계나 사상이 좁지만은 않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애와, 저서인 『구암집』·『동국지리지』를 통해, 그의 학문적 체계와 실학의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