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攀龍, 1514-1570)왕세정(王世貞, 1526-1590)사진(謝榛)종신(宗臣)양유예(梁有譽)서중행(徐中行)오국륜(吳國倫)
는 당순지 일파의 이론을 반대하면서 전칠자의 주장을 옹호하여 전칠자의 의고 주의 복고주의의 노선을 그대로 견지하였다.
2. 공안파의 등장배경
후칠자에 의하여 다시 만연해진 의고주의 기풍
-고문사(古文辭) 연구
먼저 소라이 유학 사상의 기반이 되는 그의 학문적 방법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반은 보통 고문사학(古文辭學)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고대의 문장 양식과 구문법에 대한 연구라 하겠다. 물론 '고문사'라는 말 자체는 이반룡(李攀龍)과 왕세정(王世貞)을 비롯한 일단
시는 얼마나 새로울 수 있는가?
-자득-
1. 들어가는 말-‘자득’의 범주
自得은 創新을 뜻한다. 기존의 것을 본뜨지 않은 斬新한 獨創, 創意, 創造 등이 自得의 意味 範疇와 넘나들거나 겹친다. 따라서 이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自得은 ‘따라하기’, 즉 模倣을 嫌惡한다. 주지하다시피 獨創,
1. 역사적 배경
- 중국의 경우 시경은 그 문학의 형식이나 내용을 막론하고 근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승 발전되면서 그때 그때 그 시대에 상응하는 문학을 발전시켜 왔다. 중국의 경우처럼 수 천년을 두고 같은 흐름의 문학이 끊임없이 연이어져 온 보기란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는
이백(李白:701-762)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 자는 태백(太白).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도 한다.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꼽힌다.생애제1기(출생~25세)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촉(蜀)의 면주(綿州:지금의 쓰촨 성[四川省] 창밍 현[彰明縣])에서 출생했다는 설, 5세 때 아버지와 함께 서
정약용의 생애
성장기 (1762-1782)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
개혁정치의 큰 뜻을 품고(1783-1800)
경기도 암행어사
↓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목격
↓
폭정을 고발하여 처발하도록 함
중략
말년 고향에 돌
④憂國衷情과 抗日의 노래
19세기로 접어든 조선은 국론이 삼분오열하며 결국 경술국치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위태로운 조국의 현실을 표출한 대표적 문사는 강위, 이건창, 황현, 김택영으로 이어지는 韓末四家들이다. 그 중에서도 강위와 이건창은 아직 망국 이전의 인물이라서 우국충정의 시
다릉시파의 뒤를 이어 前後七子가 등장하여 대각체를 무너뜨리고 복고를 주장하며 秦漢의 문장과 盛唐의 시를 표준으로 하였다. 전칠자의 영수는 李夢陽인데, 『明史』에서는 그에 대하여 “이몽양은 才思가 뛰어나고 굳어서 復古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홍치 연간에 재상 李東陽이 문단의 실권
전기(傳奇)의 생성과 배경을 크게 총괄적으로 이야기 해 보자면, 송대(宋代)의 남희(南戱)와 원대(元代)의 잡극(雜劇)을 거쳐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송대(宋代)의 남희(南戱)는 희문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남희(南戱)는 음악면에서 남곡(南曲)에 속하기 때문에, 원대(元代)의 잡극(雜劇)인 북곡(北曲)
명대 산문과 문학유파는 복고를 주장하는 큰 흐름과 이에 반발하는 조류로 대별할 수 있으나 정반합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개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문학유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정(正)의 단계란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