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우 ( Lee Keun Woo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2017] 제36권 182~211페이지(총30페이지)
2017년은 단원 김홍도 탄신 272년이 되는 해이고 연풍현감에 제수된 지 226년이 된다. 단원 김홍도는 화원(畵員)과 관료(官僚)라는 양립(兩立)하기 어려운 두 역할을 이루어낸 보기 드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관료행적으로는 안동 안기(安奇) 찰방(察訪)과 충청도(忠淸道) 괴산군(槐山君) 연풍현감(延豊縣監)을 지냈다. 특히 어진도사(御眞圖師)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조(正祖)는 1791년 12월 22일에 연풍현감에 제수(除授)하였고 1795년 1월 7일 해임까지 약 3년간 재직하였다.
기존에 발표된 단원 김홍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회화작품 연구 위주이고 그 연구 성과에 비해 단원 김홍도 관료 행적(行蹟)과 치적(治績)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연구자료 출간 및 실증적인 자료 소개의 측면에서의 검토 ...
작가의 창조적 창작활동이 그 작가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한국의 문화예술계의 현실에서 한국서예가 예술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창출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조건이다.
시장의 창출은 서단의 정치세력화와 담론의 생산, 그리고 정부의 법률·제도·행정·예산의 중·장기적인 계획이 함께할 때 가능하다. 이때 정부지원의 근거는 서예의 공공적 편익성이다. 따라서 한국서단은 한축으로 서단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정부와 지자체를 추동해 내어야 하고, 다른 한축으로는 서예담론들의 생산·유포를 통해 대국민들을 설득해 냄으로써 연대와 지지,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지지와 지원, 연대 없이 서단 중심의 독자적인 시장의 창출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의 서예의 위기를 극복하는데도 한계를 갖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보다...
조동원 ( Cho Dongwon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2017] 제36권 264~290페이지(총27페이지)
단원 김홍도(1745-1806?)는 전통회화의 대화가로 神筆, 破天荒의 솜씨를 지닌 畵仙으로 불리운다. 단원은 그 명성에 걸맞게 늘 새로운 변화와 창작의 과정을 통해 시대를 이끌어가던 화가였다. 조선의 國是는 성리학이었지만 유·불·선을 포함한 다양한 철학이 공존하고 있었고, 단원은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 그만의 審美意識을 이끌어내어 音樂風流를 形象化했다. 志와 情感을 담은 畵와 樂으로 당대의 멋스러운 音樂風流를 표현하고 있는 단원의 畵中有樂에는 心正과 愼獨의 수신을 지향하는 선비가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逍遙遊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神仙이 생황과 피리를 부는 모습이 있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단원에 대한 많은 연구를 시도해왔고, 또 다양한 연구문헌들이 계속적으로 발표되어 왔음을 볼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연구가 주로 30대의 작품인 풍속화와 ...
중국미술계에서는 개혁개방이 불과 30여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만큼 많은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미술계에서는 여러 형태로 `민족성` `정체성`에 대하여 매우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형식 또한 논문, 세미나, 칼럼 등을 통한 논쟁과 함께 작가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하여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토로하고, 그 정신성과 방향을 모색해가는 일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본 논문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당대미술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이 대두되고 애국주의, 국가주의적인 형태로까지 진전되어 왔던 다양한 관점들을 정리하였다. 최근 들어 점진적으로 국수적, 민족주의적 요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글로벌 시대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작가, 비평가, 학자들의 논의를 연구, 분석하였다. 용어사용과 범위에 있어서는 가급적 `민족주의`라는 ...
한윤숙 ( Han Yoonsook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2017] 제36권 318~343페이지(총26페이지)
`조선풍`은 기존의 사고의 틀을 벗어나 우리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눈앞의 진실을 추구하는 조선후기에 나타난 주체적 문화현상이다.
18세기 조선사회는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어 혼재하면서 주자학적·중화주의적 세계관이 크게 흔들렸다. 특히 북학파를 중심으로 하여 조선을 열등한 가치로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본래 가치를 깨닫고, 나아가서 중국에서 벗어난 조선의 주체성을 말하였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조선 문화의 재인식이 가능했던 것이 `조선풍` 형성의 주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小中華主義와 華夷論을 극복하고 문화주체의식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사상적 연원이 있다.
첫째, 탈도덕적 자연적 존재론에 바탕을 둔 相對主義的사유방식이다.
둘째, 地球說(地圓說)에 근거하여 어디고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보는 多中心說이다.
셋째, 문화...
고광의 ( Ko Kwangeui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2017] 제35권 27~57페이지(총31페이지)
본 논문은 문헌과 문자 유물을 통해 고구려 書寫文化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高句麗는 古朝鮮의 서사문화 전통을 이어받았다. 주몽은 원래 夫餘에서 성장하였고 상당수 부여계 유민들과 함께 남하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 초기에는 부여의 서사문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나라의 서사문화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하였으며, 史書를 편찬하고 詩歌를 제작하는 등 고구려 초기 국정 전반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고구려 문자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4세기 이후 중원에서의 書體演變추세는 隸書가 쇠퇴하고, 章草가 今草로 발전하며, 行書와 楷書가 기본적인 완성을 이루었다. 당시 고구려에서도 隸書가 점차 쇠퇴하고 新隸體가 사용되었으며, 行書가 발전하고, 楷書가 성숙하는 과정이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고구려에서 서체 연변이 국제적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알...
18세기에 서구 근대가 탄생시킨 순수미술(Fine Art)이 `유용성`을 배제하면서 모더니즘 시기까지 최고의 미를 구가할 때, 공예는 장인(匠人)에 의한 장식예술이자 응용미술로서 단지 부가적인 미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양에서는 윌리엄 모리스(W.Morris)의 미술공예운동을 계기로, 또한 동양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민예운동을 시발점으로 하여 각기 공예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환기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모리스와 야나기의 사상 속에 `공예(工藝, craft)`라는 개념은 결코 동일한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양의 중세미술을 모범으로 하는 미술공예운동의 곡선적이고 우아한 `미술공예`와 야나기의 민예관에 소장된 소박하고 단아한 `민예`를 떠올려 본다면 이들 공예 간에 어떤 공통적인 조형상의 미적특질을 찾기는 어려...
본 연구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을의 벽화에 대한 제작 의도와 의식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현지 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서 제시하고 향후 마을 벽화 제작시 좀 더 미적이고 가치 있는 벽화 제작을 제언하고자 연구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낙후된 마을이나 지역의 특수성을 알리고자 하는 마을에 벽화가 그려지고 있는 데, 이러한 좋은 취지와 달리 마을 주민들의 불만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마을의 벽화가 주민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벽화를 제작하기 전에 주민과의 소통과 생활문화에 기반한 마을 벽화를 제작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 마을 벽화 전환 의식의 요인으로 무분별한 벽화 제작, 지역 및 마을의 생활문화 이해 부족, 장소성과 작품 주제의 부적합, 체계적인 작업 과정 및 사후 관리 미흡, 주민과의 소...
예술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는 작품을 중심으로 美/善, 유미주의/교훈주의, 내재적 방법/외재적 방법 등으로 구별하여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근·현대적 개념으로 예술의 자율성과 비예술적 요소들과의 소통가능성을 중심으로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중심의 예술이해는 동아시아 예술의 근간담론을 형성해 왔던 修養論적 예술관을 담아내기에는 많은 한계를 드러낸다. 동아시아의 예술은 예술결과로서 `작품`보다, 예술과정에서의 `활동[노동]`을 보다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은 자기 동일적인 고정된 존재이지만, 새로운 감상자를 만날 때 마다 새로운 해석을 낳으며 창조되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예술활동의 전 과정, 창작→작품→감상이라는 가치창조의 구조는 영구혁명과 같다. 예술결과로서 작품이 끊임없는 감상의 창조라는 예술과정에 놓여...
강교희 ( Kang Kyo Hui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2017] 제35권 5~26페이지(총22페이지)
교화 수단으로서의 도구적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고대 회화는 위진 현학(魏晉玄學)의 등장과 함께 예술 작품으로서의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사물의 형(形)과 신(神)을 분리하여 사유하는 방식의 도입으로, 형태가 없는 신의 작품 반영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었고, 이러한 사유의 축적은 회화 영역에 `전신`이라는 명제를 탄생시켰다.
전신은 인물 혹은 사물에 내재된 정신을 작품상에 구현하는 것으로서, 이에 관한 해석 가운데 고개지와 소식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동진(東晉)의 고개지(顧愷之)는 처음으로 전신을 제시하였으며, 북송(北宋)의 소식(蘇軾)은 고개지의 전신에 대한 주장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에 의한 구체적인 견해를 덧붙였다.
그러나 전신론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고개지와 소식의 견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같은 범주의 이론으로 간주함에 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