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기하학적 추상주의)에 대한 뜨거운 추상(타시즘,앵포르멜)도 추상표현주의라 불린다.
1940년부터 1970년까지의 미술사는 미국이 주도하였다. 다른 영역에 있어서도 미국의 이미지는 거대했으며, 2차 대전이후까지 미술시장을 장악했던 파리와 그 주변의 유럽 문화는 전쟁의 결과 피폐해졌다. 많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 대한 평문을 통해 자신의 형식주의를 알렸다.
1950년대에는 그린버그의 형식주의가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며, ‘미술계의 교황’, ‘미술계의 감독’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후에 달라진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지속되었고 1960년대 전반에
미국의 화가 Jackson Pollock의 생애와 작품을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 하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에서 개척정신, 실험정신, 대중성, 상업성, 개방성 등의 미국적 속성 또한 살펴볼 것이다.
연구 방법으로는 전후 미국사회의 시대상 및 20세기 초반의 서구 미술사에 대한 각종 논문과 단행
상기시키는 작품은 영국에서 나타났다. 즉, 1949년부터 F.베이컨이 작품에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팝아트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베이컨은 팝아트와 실절적인 관련이 없으며, 1954~1955년 겨울에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품 및 그것과 관련된 토론 가운데 팝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추상화로 완전히 전이한다. 클라인은 사실적인 초상화「Nijinsky」를 1948년에 완성했으며, 추상표현주의를 받아들인 이후 Black and White 기법의 「Nijinsky」를 1950년에 완성했다.
프란츠 클라인은 드로잉을 기초로 해서 대부분 형태의 표면을 가로질러 자신의 관심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러한 방식에서
대한 낙관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 철저한 회의주의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때 가장 널리 퍼진 철학은 실존주의 철학으로 사르트에 의하면 개인은 지극히 한정되고 불합리 하기 때문에 미지의 어두운 밤에 항거하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분투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였다.
미술가들은 실존주의 그 사상을
미국 역시 혼란스러운 대공황을 겪으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게 되었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깨어있는 청년들은 자연스레 정치의식을 갖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미술과 이념, 사회관계의 재정립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화가들이 회화의 궁극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는 데 큰 자극이 되었다.
아쉴 고르키는 터키의 아르메이나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피해 1920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초기 그는 세잔과 피카소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미로와 마송의 유기적 형태의 초현실주의 그리고 칸딘스키의 표현적 추상에 관심
작품의 배열과 작업원리에 있어서 개념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단위체를 반복하여 구조와 형태에 있어서 환원성을 드러내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애드 라인하르트가 1962년 미니멀리즘 회화에 대하여 "그것은 비대상적이고, 비재현적이고, 비이미지적이고, 비표현주의적이고, 비주관적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