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박태원의 소설가구보씨의 일일 은 당시 경성을중심으로 형성되던 도시 문명의 영향 아래 탄생하게 된다. 도시란 일반적으로 이질적인개인들이 밀집하여 상주하는 거주상태의 생활공간 을 뜻하는 것으로 이러한 개념의 틀 속에는 다양한 계층 간의 이질성, 삶의 측면이나 행위에 있어서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小說家仇甫氏─一日) 소개
박태원(朴泰遠, 1910년 1월 ~ 1986년 7월 10일)의 중편소설 ‘소설가구보씨의 일일(小說家仇甫氏─一日)은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모더니즘적인 기법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태원은 1930년대 KAPF를 중심으로 한 리얼리즘 계열 문학
을 응시하게 되는 반성적 존재자가 된다. 조정래, 「박태원의 『소설가구보씨의 일일』연구 - 모더니즘 소설과 식민지 경험의 특수성 -」, 『인문과학연구』 3호, 서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7, pp.6~16.
다음은 조정래의 논문「박태원의 『소설가구보씨의 일일』연구 - 모더니즘 소설과 식민지 경
문학 운동이 발생하고, 이윽고 문단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초의 프로문화단체인 ‘염군사(1922)’ 그리고 신인 문인들이 조직한 ‘파스큘라(1923)’ 이후 1925년 카프가 결성되고 1927년 제 1차 방향전환을 하면서 계급의식의 목적문학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다가 1930년대 들어 일제의 탄압이 심해졌
신문이나 잡지의 흥미를 위주로 한 통속류,〈약산과 의열단〉등 광복 후의 애국소설류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딱한 사람들〉(1934)·〈전말〉(1935)·〈비량〉(1936)·〈진통〉(1936)·〈성탄제〉(1937) 등의 단편과, 중편 〈소설가구보씨의 일일〉(1934), 장편 〈천변풍경〉(1936) 등을 들 수 있다.
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역사소설 『계명산천은 밝았느냐』,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하였다. 1986년 7월 10일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태원의 초기 소설은 문체, 기법, 주제 등에 있어서 모더니즘 소설의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소설인 『소설가구보씨의 일일』 등과 같은
박태원과 재혼한 것이다. 특히 권영희는 박태원과 막역한 문학적 교류를 나누었던 이상의 연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작품으로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모더니즘적인 기법으로 묘사한 중편 〈소설가구보씨의 일일〉(1934년)를 비롯하여 동생 박문원이 장정을 맡은 소설집 《천변풍경》(1936년),
을 것이다. "서정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2000년대의 서울의 거리에서도 예술가 구보는 여전히 고독할 뿐이다. 본고에서는 박태원의 문학세계를 구분지어보고 30년대의 작가세계에 대한 논의를 해보았다. 그러나 전체적 시점에서 작가의식의 변화과정을 설명하고 분석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가지
을 가했을 때, 민족의 이데올로기와 또 그 이념들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공표되던 문학의 영역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일부 문인들은 내선일체론을 현실로 받아들여 민족의 주체성을 잃은 일본 중심의 비평적 담론을 형성하였으며, 심지어는 친일적 일본문예지의 창간,
언표되는 민족의 발견에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자적 기능은 1930년대에 이르러 대두되었다. 그 중심에는 무교회주의와 관련된 《성서조선》지의 김교신, 함석헌 등이 있었다. 무교회란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가 제도이며 조직체일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