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광주항쟁에서의 민중적 지향은 항쟁 직전 학생과 시민들의 집회에서 사용된 몇 가지 자료들에서 잘 나타난다. 그 하나가 5월 16일 발표된 전남대학교 자유언론 투쟁위원회의 「대학의 소리」라는 유인물이다. 여기에서는 5월 민주화투쟁 당시의 보편적 요구였던 '유신잔당'의 전면 타도를 위
우리는 1960년대에 김수영의 「풀」을, 1970년대에 김남주의 불의(不義)에 굽히지 않는 저항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난 80년대까지 우리들의 간난(艱難)했던 현실을 비록 체험하지 못하였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어려웠던 시절, 민중에게는 민중시가 있었다. 1980년대 들어서 노동자층의 적극적인 시
80년대 민족민중미술에서의 한계와 문제점은 미술이 정치적 지향논리에 종속되어 동시대 미적 가치를 사회적, 이념적 가치로만 해석하여 90년대 국내외적인 정치적 변수에만 매달려 그들 스스로 자기한계에서 벗어나는 창조논리를 펼쳐 내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점과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민중의식의 미흡)를 깨고 민중의식을 더 심화시킨 적극적인 성격의 사회참여시를 창작해냈다. 너무 전투적인 시어를 쓰는 게 흠이지만 일반적으로 참여시의 한계점으로 지적되는 시적의 서정성을 절묘하게 가미시켜 현실 참여적이면서도 서정성까지 확보한 독특한 시의 세계를 구축한 시인으로 평가
민중논의로 구체화된다. 대학가에서 시작하여 점차 민중일반으로 확산의 추세를 보였던 탈춤을 중심으로 한 민중문화운동은 기존 대중문화의 부정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일련의 노력과 새로운 문화에의 지향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 운동은 바람직한 의식화를 위한 문화를 지향하
민중항쟁에서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80년대는 민중의 사회적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던 시기였다. 민중사학이 말하고 있듯이 민중사학의 관점에서 역사, 다시 말해 사회 변동의 주체는 민중이다. 80년대의 민중운동의 폭발적인 증가는 기존 민족사학에 민중이라는 새로운 자양분을 풍부
이상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에 대한 애민사상을 갖고 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어 모순된 체제와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사실적 서사한시등을 살펴보았고 민중이라는 용어의 기념과 미중시가 크게 나타나는 70, 80년대의 대표시들도 살펴보았다.
90년대 들어서 치열했던 목적의식이 누그러들고 방
1. 들어가며
70~80년대는 민중문학의 시대가 아니라 민중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민중 시대’로 이해되고 있다. 염무웅, 『민중시대의 문학』, 창작과 비평사, 1979.
70년대 민중시는 참여 문학 전통, 특히 60년대 김수영, 신동엽 등의 참여시에 대한 비판적 재인식과 계승 노력에 의해 정립되어 갔다.
민중시의 물고를 텄다“, ”민중시의 개막이 그로 인해 시작되었다“ 는 찬사와 함께 70년대 민중시를 주도했다고 평가되는 신경림의 시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민중시
한국현대 시문학사에서 ‘민중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대답이
Ⅰ. 부마민주항쟁(부마민주화운동, 부마민중항쟁)
1. 당시상황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빚어오다가 7년째에 접어드는 1979년에 들어와 그 한계점에 이르렀다. 이른바 ‘백두진 파동’과 박대통령 취임반대운동으로 시작된 1979년은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연행․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