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사회로 보려는 견해가 점차 우세해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의 근거는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확립되고 점차 관료제가 시행되며, 경제적으로는 한국중세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이루게 되는 사적 토지 소유에 기반을 둔 지주제가 형성되며, 사회적으로는 법제화된 세습적 신분제
사회란 전단계의 혈연, 지연적 구조를 바탕으로 부의 집중, 경제방식의 발전 등을 통해서 지배․피지배 관계를 왕이라는 통치자를 정점으로 한 통치체제가 형성된 시기라 할 수 있다. 김기흥, 「한국사의 고․중세시대구분- 사회경제사를 중심으로 총체적 시각에서」 『고대와 중세 한
시대구분을 제시했다. 백남운이 제기한 노예제사회론 이후 한국사시대구분론은 한국사에 있어서 노예제사회의 존재 유무와 그 시기 설정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백남운의 시대구분은 전석담(全錫淡)에게 비판받는다. 전석담은 한국사의 발전도 세계사적 역사법칙에 의해 발전을
구분하는 징표에 대한 견해 상 차이와 동방 노예소유자사회에 관한 의견 차이에 있었다. 송호정,「전근대사의 시대구분」, 『북한의 한국사인식 Ι 』, 한길사, 1990, p.21.
토론자들은 모두, 우리나라 역사에서 노예소유자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삼국 시기의 사회경제구성에 대하여 중점적으
역사의 시대구분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시간의 원근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이 경우 고려는 중세, 조선은 근세로 본다. 『韓國史時代區分論』(韓國經濟史學會, 을유문화사, 1970)의 8~9 p.에 나오는 이기백 님이 정리한 표를 분석하여 정리하였다.
첫 번째 방법으로 고려사회와 조선사회를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