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판인쇄(木板印刷) 기원의 전제적 여건
문화의 전파와 발달은 전적(典籍)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초기에 전적을 스스로가 베껴서 이용하였기 때문에 별로 유통되지 못하고 자급자족에 그쳤으나, 인지(人智)가 발달함에 따라 책의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도는 문화수준
2. 가람배치
(1) 해인사의 입지성
해인사의 가람배치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해인사의 입지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해인사의 입지성이 중요한 이유는, 창건 설화에 입지 과정이 매우 중요하게 설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인사의 주변 환경이 단순히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인사가 입
續藏 또는 章疏라 일컫고 있다.
2. 한역 대장경의 조성
(1) 불교계 내부요인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수많은 경전들이 주로 서역에서 건너온 승려들의 손으로 속속 번역되었다. 기원후 1세기인 후한 효명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한역된 불전들은 영제 적제이후 불전의 번역이 점점 증가하여 당나라 초
高麗續藏經)’이다. 의천은 당시 대장경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어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던 각국의 속장을 모아 1090년에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불서목록을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속장경을 판각하였다. 이러한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을 묶어서 고려의 1차 간행이라고 분류하며, 둘 모두 1231년 몽고
高麗太師壯節公遺事(평산신씨고려태사장절공유사)>에 언급된 “短歌二章(단가이장)”이라는 대목 때문이다. 이에 대한 조동일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향가는 ‘단가이장(短歌二章)’이라고 했다. ‘단가’는 토막노래라는 뜻이겠다. ‘이장’이라고 함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일 것이다.
Ⅰ. 머리말
대장경이란 경經, 율律, 논論 등 삼장三藏의 불교경전을 총칭하는 말로,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에서는 그에 대한 조조雕造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대장경의 조조는 송나라 태조 개보開寶 4년(971)에 착수하여 태종 태평흥국 8년(983)에 완성시킨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을
제4단계는 당말(唐末)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의 시기로 그 특징은 불교가 흥성에서 점점 쇠락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수당시기가 각 종파가 흥성한 최전성기였다면, 이후부터는 선종을 제외한 모든 종파는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불교는 오대(五代, 907~
1.1 불교에서의 대장경
경전은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 부처님의 설법을 정리해서 성문화할 필요를 절실히 느낀 제자들이 모여 편찬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성립한 경전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소승경장과 대승경장이 바로 그것으로, 이는 불교발달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처
ꊲ고려전기 한문학 작가와 작품
1.고려문학의 출발점-(건국초기)
고려 전기의 지배층은 신라의 전통을 이은 문신귀족인데, 원래 신라 말 당나라 유학을 가서 賓貢科에 합격한 후 돌아온 문인들이다. 이들은 신라 육두품 출신으로서 신라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다가 신라가 삼국으로 분열
들어가며
신라의 이원적인 문학양상(향가문학, 한문학)은 고려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유학을 위시한 한문학의 발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과거제도와 같은 여러 가지 정책이나 文治를 지향하는 君主들의 적극적 후원으로 인해 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