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최남선본, 이가원본, 송석하, 이희승 소장본 등이 있다.
2) <해동가요>(1763, 영조 39년)
<청구영언> 다음으로 이루어진 김수장 편찬의 시조집. 편찬방법은 작가별 배열이며 작가의 성명을 밝혀서 비교적 체제가 잘 정비됨.
3) <가곡원류>(1763, 영조 39년)
<청구영언>, <해동가요>뒤에 나타난 시조문
본고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범위 내에서 중인가객들에 의해 편찬된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삼대 가집에 대한 서지학적 내용을 살펴본 뒤 시기와 맞물려서 달라지는 중인가객들의 연행 유형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대표적인 중인가객들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상사(想思)의 情을 읊고 있으며, 안민영의 시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한자투어나 한시에 나오는 전고(典故)가 적고, 오히려 여항가요적인 성격이 짙다. 그리고 황진이의 시조를 본뜬 것 같은 시조를 비롯하여, 기녀 시조처럼 시적 화자가 님과 이별하는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시조들을 남기고 있다.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연행된 문학이었다. 몇몇 곡조가 정해져 있고, 여기에 시조 작품이 개별적으로 대응되는 방식이었다. 이 때에는 시조 작품 그 자체보다 가락과 곡조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시조의 개별적인 고유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으
본래 시가에 대한 문학적인 명칭이 아니고 원래 음악의 하나인 창곡명이었다. 시조는 이전에는 신번(新飜), 신성(新聲), 신조(新調), 단가(短歌) 등으로 불려왔으며 이는 고악에 대한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지닌다. 즉 시조는 근세 이전까지 문학작품이기보다는 가곡의 노랫말로서 위치를 지녔다.
시
시조는 우리 문학의 전통적 양식 가운데서 가장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창작, 가창되고 다수의 작품이 현전하는 갈래이다. 고려 말엽 발생하여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융성하게 된 시조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창작되었던 많은 시조들을 모아 시조집으로 편찬되게 된다.
시조집은
시조를 읽는 방법
① 시조의 형태를 알아본다 : 시조는 3장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3장 3줄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6줄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각 장의 구(句)를 2구씩 한 줄로 하여 6줄로 벌여 놓아도 형식은 평시조이다. 또 같은 평시조라도 어느 구가 몇 자씩 더 늘거나 줄 수도 있다. 이
가곡원류」가 편찬되었고, 그 밖에도 「고금가곡」, 「근화악부」, 「병와가곡집」, 「화원악보」, 「동가선」, 「남훈태평가」등이 쏟아져 나왔다.
본고에서는 3대 시조집이라 일컬어지는 김천택의 「청구영언」, 김수장의 「해동가요」, 박효관·안민영의 「가곡원류」를 중심으로 시조집의 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