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후의 훈민정음론
1. 들어가며
세종 이후 세조와 그 이후에도 언해서들이 간행되기는 하였으나, 조선 시대 어학 연구는 훈민정음 창제를 전후로 하여 10여 년간 활발했다가 부진한 상태에 놓였다. 한글은 세종의 찬란한 업적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급면에 있어서는 성공적인 것이 아
아득한 옛날에는 오늘의 韓半島(한반도)와 滿洲(만주)에 걸친 넓은 지역에 여러 언어들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도 이들은 거의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여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옛 史書(사서)에 토막 기록들이 더러 전하여 이 언어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 허준이 왕명을 받아 편찬. 胎産과 痘瘡에 관한 방문이 실려 있다. 허준의 「東醫寶 鑑」(25권)은 식물, 동물, 광물의 이름에 한글표기가 되어 있어 국어연구에 좋은 자료
(2) 東國新續三綱行實圖 (광해군 9, 1617)
: 「三綱行實圖」의 본을 따라 임진왜란 중에 목숨을 잃은 효자, 열녀, 충신에 관한 기 록을
지금부터 소개할 국어 자료는 고대, 전기 중세, 후기 중세 그리고 근대 국어를 순서로 정리하였다. 세부적으로는 고대 자료는 신라어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으며, 전기 중세 자료 편에서는 계림유사, 향약구급방 등 주요 자료와 차용어 자료 및 일본 자료 등 기타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후기 중세
『한국어 변천사』 조사 보고서
〈훈민정음의 판본
창제목적
제자원리
최세진의「훈몽자회」〉
이번「한국어변천사」시간에는 그 강의의 이름처럼 ‘한국어변천사’라는, 한국어가 아주 오래전부터 겪어온 변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어의 계통과 그 유형에서 다른 나라 언어와
Ⅰ. 서론
조선의 국어 연구는 세종 조 훈민정음 창제와 이에 이은 『동국정운』과 『홍무정운역훈』 편찬 등의 업적을 통해 융성했다. 그러나 국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중종 조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지나면서 휴식기에 접어들게 된다. 국어에 대한 관심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발흥되는데
(A)의 (a)의 예는 다 시(존대) ㄹ(어미) 뒤의 사이소리인데 연결 사이소리 ㅅ과 입성 사이소리 ㆆ이 혼용되고 있다. 이것은 집필자가 자기의 의도에 따라 연결 사이소리를 쓰기도 하고 입성 사이소리 ㆆ을 쓰기도 하여 다른 사이소리가 쓰여진 것이다. (B)의 예에서는 (a)는 ㅅ, (b)는 ㆆ, (c)는 사이소리를 쓰
◎조선후기 正音學者(정음학자)들의 正音觀(정음관)
영 ․ 정조 이후 고종 때까지에는 유달리 훈민정음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이 많았다.
(1)신경준(1712~1781) : 旅菴(여암) 신경준은 한글 창제 후 처음으로 한글이라는 문자를 훈민정음해례본과 마찬가지로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로 나누어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