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증왕 13년 6월 울릉도에 자리하고 있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되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우산국 사람들은 그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민집단 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
2. 이규경의 학문형성 배경
1) 가학(家學)의 전통
이규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의 집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조부인 이덕무와 아버지 이광규는 모두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중인 신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신병주, 『조선중,후기 지성사 연구』, 새문사, 2007, p.315
아마 오늘날
1. 서론
21세기의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수십, 수백 년 전의 과거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현재의 우리에게 무엇인가 의미를 던져주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과거에 대한 질문들의 적절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를 연구하
의해 채택되어 1608년 대동법으로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 해 모상(母喪)을 당해 3년상을 지내고 1610년 서반직이 주어졌으나 나아가지 않고 서울 근교 서호(西湖) 수이촌(水伊村)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곳에서 1614년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의 저술을 시작하여 죽기 15일 전에 완성하였다.
Ⅰ. 서론
지난 2월 23일 일본 시마네 현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 제정 조례안을 상정했고 같은 날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 일본 대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언급했다. 시마네 현은 독도남동쪽의, 동해와 접하고 있는 일본 본토 혼슈 섬의 한 현으로서 독도까지의 거리가 한국 본토에
살았던 조선의 학자로서, 흔히 실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3~4줄로서 짧게 요약될 수 있을 만큼 한백겸의 학문적 체계나 사상이 좁지만은 않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애와, 저서인 『구암집』·『동국지리지』를 통해, 그의 학문적 체계와 실학의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서는 그 책을 수찬한 사람에 따라 관찬사서와 사찬사서로 나누어진다. 관찬사서란 왕명에 의하여 국가적 사업으로 씌어진 것으로, 이는 개인적인 동기에 의하여 개인이 쓴 사찬사서에 비하여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다. 먼저 체재가 전형적인 역사 서술법을 따른다. 따라서 체재적인 면에서의 균형
【들어가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독도의 연대를 간단하게 살펴본 후, 붉어지는 독도문제에 대한 양측의 주장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후 일본의 전반적인 독도정책과 그 정책이 가진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고려사지리지와 동일하다. 이 이찬 이사부의 울릉도 정복에 관해서는 삼국사기의 권 44, 열전4, 이사부 조에도 상세하게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에서는 울릉의 명칭은 들지 않고 오로지 우산국이라고만 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 보다 약 150년 후에 완성된 ‘삼국유사’에서도 이사부의 정벌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