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金正喜)파를 중심으로 하여 남종화(南宗畫)의 유행이 지배적 경향으로 치달았다. 김수철(金秀哲), 김창수(金昌秀), 홍세섭(洪世燮) 등 일부화가들에 의해 참신한 이색화풍(異色畵風)이 형성되었다. 장승업(張承業)系와 허연(許鍊)系의 계보가 형성되어 현대화단으로 이어졌다.
Ⅱ. 추사김정
김정희(1786~1856)의 자는 원춘이며, 완당ㆍ추사ㆍ예당ㆍ시암ㆍ과파ㆍ노과 등 백여 개의 호를 가지고 있다. 경주 김씨 집안에서 정조 10년인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뒤에 큰아버지 노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증조부인 김한신이 영조의 사
김정희(1786~1856)의 자는 원춘이며, 완당ㆍ추사ㆍ예당ㆍ시암ㆍ과파ㆍ노과 등 백여 개의 호를 가지고 있다. 경주 김씨 집안에서 정조 10년인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뒤에 큰아버지 노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증조부인 김한신이 영조의 사
1.추사 김정희 ( 秋史 金正喜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1856 정조 10∼철종 7) 조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선석학자. 본관 경주. 자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 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정희(1786-1856)는 서예가, 문예가, 고증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논하려는(엄밀히 말해서 살펴보려는) 김정희의 면모는 이러한 서예가, 문예가가 아니라, 조선후기 유학의 한 양상인 실학파의 학자로서의 측면이다. 따라서 그에 관한 잡다한(?) 얘기는 그의 생애와 함께 간략히 다
학자로서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많은 지적 유산을 유배지에 남겼다. 이제 유배인들은 현지 주민들과의 동화를 통해서 죄수라기보다 교육자 또는 자기완성자로서 여러 성과를 남긴다.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기간에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2. 실학 학파의 분류
학자들의 주장의 내용과 시대를 아울러 고려하여 이익을 대종으로 하는 경세치용파,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이용후생파,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루게 된 실사구시파로 나누고 이 3개 유파의 집대성자를 정약용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1) 경세치용파 (중농학파)
농
Ⅰ. 조선시대화가 인제 강희안
15세기 대표적인 선비화가. 자는 경우(景愚), 호는 인제, 본관은 진주(晋州).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 觀水圖)]는 명대의 원체 화풍과 절파 화풍을 수용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턱을 팔로 괴고 물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고사(덕이 높고 나이 많
김정희
언론 기사를 통해서 노근리라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지만 정작 제대로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알 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처음 접한 노근리사건에 대한 책. 아동문학이라는 얘기에 별 내용이 없는 것들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리고 중반에서 노근리 쌍굴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