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연보
1892(1세) 음력 2월 1일 평북 정주 군에서 정주 이씨 종원의 외아들로 출생.
1902(10세) 8월 부보 콜레라로 차례로 사망
1905(13세)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도일
1916(24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25세) 장편〈무정〉 단편 〈소년의 비애〉
1919(27세) 조선청년독립선언서(2.8독립선언서)기
1. 주제와 문학사적 맥락의 상관관계
이광수의 계몽 의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한국 근대 최초의 장편소설로서의 무정을 그 중요한 기점으로 지목하곤 한다. 이는 무정의 계몽의식과 관련하여 ‘계몽기의 신문학을 종합한 하나의 기념비같은 작품’(백철, 조선신문학사조사), ‘개화기 시대를
Ⅰ. 서론
1. 연구사 검토
이광수(춘원)는 1892년에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 6.25때 월북하여 1950년 10월에 사망하였다. 그는 ‘한국의 톨스토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여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러한 춘원의 삶을 ‘고아의식’으로 살펴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광수(李光洙, 1892~1950.10.25) 호 춘원(春園)이고 1892년 2월 1일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했다. 이광수는 아버지 이종원과 어머니 충주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운과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가문의 몰락으로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서 1902년 11세에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두 누이동
춘원(春園)이광수처럼 우리 문학사에서 치명적이도록 명성과 비난의 명암이 갈리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소설에서 근대소설로의 전환기에 그처럼 우뚝 선 사람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정」을 비롯하여 그의 숱한 작품들은 근대적 문체의 확립, 시제 ․ 대명사의 활용과 같은 표현방법
Ⅰ.서론
한국의 현대 소설의 문을 연 작가이자 동시에 친일파라는 상반되는 명함을 가진 이광수는 한국 문학사의 하나의 비극이다. 민족의 문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작가에 대해 존경이나 인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를 우리 문학사에서 제외하면 소설사의 중요한 연결 고리를 잃
이광수의 민족주의적 운동과 작품, 친일적 행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친일적 성향을 띄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이광수를 파악하고자 할 때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광수를 ‘한 개인’ 혹은 ‘자연인’ 그 자체
도서관에서 이광수를 검색해보면 한국 근대문학의 어떤 작가들보다 많은 수가 나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창작한 작품보다, 이광수의 인생․사상․문학 등에 대해 분석한 자료가 훨씬 많음도 보게 된다. 이광수는 국문학에 있어 어떤 인물인가.
조동일 선생은 ≪한국문학통사≫에서
Ⅰ. 연구사 검토
1910년대의 소설에 관한 연구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에 대한 것이 거의 전부를 차지했다. 1910년대의 소설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된 것은 김기현과 김학동이 소성 현상윤의 단편 소설로 논의를 확대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이 시기에 대한 논의는 보다 확대되기 시작하였으며, 네
내가 이광수를 처음으로 알게된때는 아마도 국민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광복절 특집으로 이광수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꾸며서 방송을 해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하얀 한복을 입고 안경을 낀 이광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