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고대국가
우리의 고대사를 돌아보면 중국이나 일본을 위시한 아시아 지역이나 중남미, 그리고 유럽지역에 비해 문화유산이 위축될 만큼 적다. 우리나라에는 전쟁이나 난리가 많았던 만큼 고대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을 수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실상을 찾아보면 본래부터 많이 만들어지지
서설
기존에 한국고대사 인식 체계 속에서는 삼국시대 개념이 설정되어 가야사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삼국만이 존재하였던 시기는 대가야 멸망연도인 562년부터 660년까지의 98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개념은 재고되어야하며 열국시대, 사국시대의 개념이 필요하다. 가야
한국사 시대구분의 여러 유형과 문제점」『한국사 시대구분론』, 소화, 1995, p123.
시대구분은 연구자의 시각과 견해차가 크고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정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한국고대사 시대구분은 국가형성론과, 중세 이행기론 등은 아직도 학자간 견해가 좀
Ⅰ. 들어가며
1.비문의 구성Missin'-link ' 한국고대사연구회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이후 ‘비문’으로 약칭)은 4면에 걸쳐 모두 44행 총 1,775자(보이지 않는 글자까지 합하면 총 1,802자)가 적혀있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은 고구려 왕실의 계보와 약력을 기록
제6장 탑(塔)
·불교수용의 역사적 의미
< 고구려 372. 백제 384. 신라527.>
1. 국왕을 중심으로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형성의 관념적 표현
→ 불교의 '초부족적' 성격
2. 불교적 이념을 통해 왕실권위 강화 , 국가의식 고취
① 불교적 왕명시대(514∼654) 법흥-진흥-진평-진지-성덕-
한국 바위그림의 대표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양전동과 안화리에서 발견 및 분포하고 있다. 선사시대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고령의 암각화는 신앙의식의 장소였으며, 동시에 가족과 후손의 및 자신의 안전과 생명유지를 기원하는 장소로서 그 의미를 가졌다.
앞서 설명했듯이 암각화는 당시의 생활
< 삼국의 신분구조 >
<삼국의 사회․경제적 신분구조>
고구려와 삼한 지역에 있었던 읍락사회는 농경 정착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적소유제가 확립되고 계급과 계층 그리고 신분이 형성되어 가는 양상을 보였다. 읍락들은 상호간에 경쟁하기도 하였으나 중국세력 및 주위 여태 동이족
한국 고대의 묘제
1.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묘제
1) 신석기시대의 묘제
신석기시대의 무덤은 얕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후 그 위에 돌을 덮은 돌무지무덤과, 흙을 덮은 움무덤, 두벌 묻기 한 집단무덤이 조사되었다. 돌무지무덤은 연대도와 욕지도, 금곡동 율리 유적에서 발견
머리말
70년대 초 이후 한국고대사 분야에서 가장 큰 쟁점의 하나로 부각되어 관심을 끌어 왔던 것은 초기국가의 형성과정을 둘러싼 문제였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에서 초기국가는 씨족(氏族)→부족(部族)→부족국가(部族國家)→부족연맹(部族聯盟) 이란 일련의 계기적인 발전 과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