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상적 대립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간단하게 분석?정리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정치적 분립(分立)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렇게 소설 속에 나타난 사상들을 정리하다보니 저자 이인화가 생각보다는 치밀하게 소설에 대한 배경을 연구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엿보이면서
Ⅰ. 들어가며
1. 호락논쟁의 배경
호락논쟁(湖洛論爭)은 18세기 중, 후반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사학(史學)계의 의견을 참고하면 호락논쟁의 맹아(萌芽)가 이미 양란 이후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락논쟁이 기호학파(畿湖學派), 정치적으로는 노론(老論) 내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Ⅰ. 서론
성리학은 중국에서 북송대에 일군의 학자들이 유교에 바탕하여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탐구하는 과정에 형성-발전하게 되었다. 주렴계, 소강절,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 등은 절충과 종합의 방식으로 기존의 유교에 도교, 불교적 요소를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유직柳稷등이 율
호락논쟁으로 대표되는 심성론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켰다. 이러한 성리학의 교조화 현상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탈성리학 경향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II. 조선후기 성리학적 분파
1.영남학파(嶺南學派) 성리학의 특성
(1)퇴계학파(退溪學派)
이황과 그 문인 후학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성리학의 근본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성리를 천리와 천성, 즉 천명이 인간에 내재한 성(本然性)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主體性을 형이상학화하여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공자, 자사, 맹자를 이어받은 송대의 정주학 즉 성리학이라 한다면 이것의 특징은 모두 천인 관계를 위주로 하여 객관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
2. 외암의 인물성동론
외암은 천명(天命) 오상(五常) 태극(太極)과 본연지성(本然之性)에 대해, 리의 가리킴에 따서 그 명칭을 달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천
호락논쟁’(湖落論爭)이라는 별칭도 갖게 되었다. 윤사순, 『인성물성론』 , 한길사, 1994, 23쪽.
기질지성과 본연지성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같고 다름에 대한 논의는 사실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리학에서 성性을 본연지성으로 이해한다면 인성과 물성은 ‘같다’
(性情)과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더 추구하였으니, 이퇴계와 기대승 및 이율곡과 성혼의 사단 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변(論辨)이 바로 그것이며, 그들은 이 논변을 통하여 이기성정론(理氣性情論)을 활발히 전개시켰다. 한편, 내면적 도덕원리인 인성론(人性論)은 송익필(宋翼弼)김장생(金長生) 등에
2. 南塘 ․ 巍巖 以前
ㄱ. 退 ․ 栗
a. 退溪 李滉의 人物性論
人物性의 同異문제에 대하여 퇴계가 직접 언급한 바는 없다. 다만 이와 관련한 퇴계의 견해는 “모든 것은 理와 氣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고” ‘理氣合而命物’ -『退溪全書』1책,「答李達李天機」
모든 사물은 그 理를 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