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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남명학연구원1027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내암의 하학전통 계승과 정치사상의 특징
송치욱 ( Song Chi-wook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93~143페이지(총51페이지)
이 논문의 목적은 남명이 강조한 ‘하학’이 유학의 본령을 담고 있는 전통이며, 이러한 남명의 하학 전통을 내암의 정치사상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내암은 남명의 고제高弟로서 ‘하학下學’을 강조하는 남명의 학풍을 계승하였다. 남명은 퇴계와 갈등하면서까지 하학을 강조하고, 하학을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천리天理를 입에 담는다며 당대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남명에게 있어 하학은 상달의 공부를 위한 단순한 입문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유학의 본령을 담고있는,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송유宋儒는 물론이고 내암 또한 지적하듯 ‘하학’은 불교나 노장으로부터 유학을 구별하게 하는 주요한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유학에서 하학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러한 하학을 강조한 남명의 사상은 내암으로 이어져, 그의 출처관, 시대...
TAG 하학론, 출처관, 實의 정치사상, 민본사상, 보민사상, Ha-hak, Chulcheo(出處, working for state or living in seclusion), Poltical thought of Practicality, The people-oriented thought, The thought for the people
내암 정인홍의 강학과 교육
사재명 ( Sa Jae-myung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145~183페이지(총39페이지)
내암은 남명으로부터 敬과 義를 체득함으로써 남명학을 계승하게 되었다. 내암의 문인형성과 더불어 강학공간에 기반하는 강학활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강학활동의 기반은 내암의 교육관과 목적, 그리고 교육내용과 방법을 구체화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를 통해서 그의 교육사상의 대체적인 면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내암은 13세 때(1548)에 안음현의 葛川林薰에게 잠시 배웠다가, 15세 때 삼가 외토리 토동마을의 계부당으로 남명을 찾아가 입문하였다. 내암과 남명문인간의 강학활동공간은 남명의 강학지인 김해의 산해정, 합천의 뇌룡정, 그리고 산청의 산천재를 비롯하여, 누정재사와 서당, 서원 등이 있었다. 내암은 당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경쟁사회의 역기능이 만연하는 풍토를 비판하였다. 당시 현실교육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내암은 아동의 양육, 교사론, 그리...
TAG 南冥, 曺植, 來庵, 鄭仁弘, 講學, 敎育, Nam-myeong, Cho, Sik, Nae-Am, Chung, In-Hong, disciple of Nam-Myung, disciple of Nae-Am, Archives, pursuit of study
임진왜란 초기 내암 정인홍의 의병활동
박용국 ( Park Yong-guk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185~245페이지(총61페이지)
내암 정인홍은 왜군의 침략 소식을 늦어도 4월 14일 저녁이전에 알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내암의 문인 雪壑李大期는 동래부사 송상현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4월 15일에 듣고 내암에게도 전달했던 것 같다. 내암은 그 이후 전황도 그의 문인들과 家僮을 통해 속속 전달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경상감사 김수는 4월 18일 밤을 무릅쓰고 영산에서 낙동강의 朴只谷津을 건너 초계로 退走하였다가 19일에 다시 합천으로 물러났다. 이 소식을 접한 정인홍은 합천에서 김수를 만나 적을 토멸할 계책을 제의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정인홍은 향병만이 아니라 흩어져 달아난 장졸을 불러 모아 규율을 세우고, 그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적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았다. 정인홍의 사회적 관계와 남...
TAG 임진왜란, 정인홍, 의병, 손인갑, 낙강, 초계, 마진, 김준민, Imjinwaeran, 壬辰倭亂, Jeong In- hong, 鄭仁弘, Euibyeong, 義兵, Son In-gap, 孫仁甲, Nakgang, 洛江, Chogye, 草溪, Majin, 馬津, Kim Jun-min, 金俊民
래암정인홍(來庵鄭仁弘)의 회퇴변척(晦退辨斥)에 대한 반론과 변론 -『퇴계학설반대상소문(退溪學說反對上疏文)』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전병철 ( Jeon Byeong-cheol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247~291페이지(총45페이지)
이 논문은 『退溪學說反對上疏文』이라는 책을 통해 鄭仁弘의 晦退辨斥에 대한 논란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논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했다. 하나는 이 책과 『光海君日記』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여 실록을 편찬할 당시 어떤 자료가 삭제되고 생략되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퇴계학설반대상소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회퇴변척에 대한 논란을 살펴보았을 때, 『광해군일기』의 편찬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퇴계학설반대상소문』을 『광해군일기』와 대조한 결과, 실록에는 기사로만 적시하여 내용을 알 수 없던 상소문 중에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19건이 있었으며, 언급조차 되지 않은 상소문으로 8건이 더 있었다. 회퇴변척과 관련된 상소문 가운데 『광해군일기』에 생략되거나 기사로만 제시된 상소문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을 때...
TAG 光海君, 鄭仁弘, 李爾瞻, 晦退辨斥, 『退溪學說反對上疏文』, 『光海君日記』, King Gwanghae-gun, Jung In-hong, Yi Yi-cheom, Hoetoe Byeoncheok, 『Sangsomun in Opposition to the Academic Theories of Toegyeo』, 『Diary of King Gwanghae-gun』
설화에 나타난 來庵鄭仁弘의 형상과 그 의미
황명환 ( Hwang Myeong-hwan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293~330페이지(총38페이지)
본고는 설화에 나타난 내암의 형상과 그것이 지닌 의미에 대해 구명하였다. 내암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드러냈으며, 이로 인해 남명의 수제자가 되었다. 그는 남명의 가르침을 받들어 평생 敬義로써 자신을 단속하였으나, 스승에 대한 존숭이 지나친 나머지 독선적인 노선을 견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직된 사고로 인해 그는 인조반정 당시 반대파에 의해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내암 설화에는 이러한 내암의 모습이 잘 형상화 되어 있다. ‘중동’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과 높은 벼슬아치에게도 굽히지 않는 그의 태도는, 바로 내암이 지니고 있었던 뛰어난 자질을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리고 내암 설화에서 내암은 스승인 남명을 보호하기 위해 중동을 이용하여 구렁이를 죽인다. 이를 통해 구렁이가 내암이 배척한 타학파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내암 설화에서 ...
TAG 정인홍, 인조반정, 내암 설화, 경상도 설화, 지역문학, Jeong In-hong, King Injo’s Restoration, A folktale of Nae-am, Gyeongsangdo folktales, Regional Literature
『논어』에서 공자의 덕치이념에 대한 일고찰 : 주자와 다산의 敬과 德治에 대한 주석을 중심으로
임헌규 ( Lim Heon-gyu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333~371페이지(총39페이지)
유교는 修己를 통해 德을 쌓은 군자가 덕치를 시행하여 지선의 공동체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치이념으로서 유교의 덕치는 『서경』의 「요전」에서부터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공자 또한 수기치인의 덕치이념을 계승ㆍ발전ㆍ정착시켰다. 요컨대 공자에 따르면, 敬으로 修己를 이룬 군자는 덕치로 안민ㆍ안백성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그 수단으로서는 예악을 우선으로 하고 형정을 부차적인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논어』에 나타난 공자 정치이념의 핵심을 형성하는敬과 德治개념을 여러 주석들의 대비적 고찰을 통해 그 의미를 추적하여, 유교정치의 특징과 (신고주와 대비한) 다산 주석의 특징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서경』에서 敬과 德(敬德)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폈다. 다음으로 『논어』의 敬과 德治개념 및 그것이 나타난 구절과 주석을 살...
TAG , , 德治, 주자, 다산, Confucius, reverence, Virtues, Chu-Hui, Dasan
「신명사도(神明舍圖)」의 현대적 해석 시도 -마음의 인지와 소통의 기능을 중심으로-
조창섭 ( Cho, Chang-sub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373~416페이지(총44페이지)
남명의 「신명사도(神明舍圖)」는 마음을 왕이 통치하는 국가에 비유하여 도식화 해놓은 것이다. 도식화 되어 있는 마음은 마음을 수양하여 티 없이 맑고 밝도록 하여 세상사를 처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마음의 상태를 만들도록 도식화 해 놓은 수양론의 집약도이다. 그러므로 이 도식은 마음을 갈고 닦아 본성을 보존하여 선(善)에 나아가고, 내부의 인욕을 없애고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어 존재의 일반원리와 합일되어 성학(聖學)을 추구하려는 노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신명사도」에 대한 연구의 모범은 후산(后山) 허유(許愈)나 복암(復菴) 조원순(曺垣淳)의 연구와 최근에 연구된 몇 편의 논문과 저서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연구와 저서에서는 「신명사도(神明舍圖)」의 구조물이나 관직명 그리고 개념어(槪念語) 등을 성현들의 말씀과 일치시켜 훈고(訓誥)학적 방법으로 연...
TAG 「신명사도」, 남명 조식, 수양론, 천인합일사상, 스키마 이론, 인지론, 소통이론 「신명사도(神明舍圖)」의 현대적 해석의 시도 -마음의 인지와 소통의 기능을 중심으로-, Sinmyeongsado, Cho Sik, xiuyanglun, Cognition, Communication
한시로 그린 회연서원(檜淵書院)과 그 주변
정우락 ( Jung Woo-rak )  남명학연구원, 남명학 [2019] 제24권 417~460페이지(총44페이지)
본고는 회연서원과 그 주변을 역대의 시인들이 어떻게 한시로 형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를 향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무흘구곡 제1곡인 봉비암과 결합되어 있어 명실상부한 성주의 제일 명승지다. 김종직과 주세붕 등이 이곳을 문학 창작공간으로 삼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정구가 이곳에 회연초당을 짓고 강학을 하기 전부터 양정(陽亭)의 봉비암 일대는 절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학자 정구의 회연 이거(移居)와 사후의 서원 건립은 심방 (尋訪)과 이에 따른 창작을 더욱 증폭시켰다. 시기적으로는 정구 당대에서부터 최근세까지 이어지고, 정파적으로는 영남 남인을 중심으로 노론까지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선비들은 정구에 대한 존모는 물론이고 회연서원을 둘러싼 다양한 사연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특히 18세기의 정위,...
TAG 한강 정구, 회연초당, 회연서원, 봉비암, 지애 정위, 오일헌 정관영, 영남 남인, Hangang Jeong Gu, Hoiyeon Chodang, Hoiyeon Seowon, Bongbiam, Jiae Jeong Wi, Oilheon Jeong Gwan-yeong, Namin of Yeongnam
고립사회와 인공지능
김석수  남명학연구원, 선비문화 [2019] 제35권 2~11페이지(총10페이지)
본고는 회연서원과 그 주변을 역대의 시인들이 어떻게 한시로 형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를 향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무흘구곡 제1곡인 봉비암과 결합되어 있어 명실상부한 성주의 제일 명승지다. 김종직과 주세붕 등이 이곳을 문학 창작공간으로 삼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정구가 이곳에 회연초당을 짓고 강학을 하기 전부터 양정(陽亭)의 봉비암 일대는 절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학자 정구의 회연 이거(移居)와 사후의 서원 건립은 심방 (尋訪)과 이에 따른 창작을 더욱 증폭시켰다. 시기적으로는 정구 당대에서부터 최근세까지 이어지고, 정파적으로는 영남 남인을 중심으로 노론까지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선비들은 정구에 대한 존모는 물론이고 회연서원을 둘러싼 다양한 사연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특히 18세기의 정위,...
봉강 조겸의 생애와 학문(1)
조구호  남명학연구원, 선비문화 [2019] 제35권 12~21페이지(총10페이지)
본고는 회연서원과 그 주변을 역대의 시인들이 어떻게 한시로 형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를 향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무흘구곡 제1곡인 봉비암과 결합되어 있어 명실상부한 성주의 제일 명승지다. 김종직과 주세붕 등이 이곳을 문학 창작공간으로 삼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정구가 이곳에 회연초당을 짓고 강학을 하기 전부터 양정(陽亭)의 봉비암 일대는 절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학자 정구의 회연 이거(移居)와 사후의 서원 건립은 심방 (尋訪)과 이에 따른 창작을 더욱 증폭시켰다. 시기적으로는 정구 당대에서부터 최근세까지 이어지고, 정파적으로는 영남 남인을 중심으로 노론까지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선비들은 정구에 대한 존모는 물론이고 회연서원을 둘러싼 다양한 사연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특히 18세기의 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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